행복(幸福)!, 얻는 것이 아닌, 느껴가는 것

기고
행복(幸福)!, 얻는 것이 아닌, 느껴가는 것
  • 입력 : 2021. 11.09(화) 13:35
  • 영암일보
김도상 작가 전)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행정학박사
행복(幸福 : happiness)이란 말을 글머리에 쓰고 보니 흔히 쓰는 말이면서도 지극히 철학적이란 선입견이 먼저 들어 부담이 느껴진다. 그러나 '행복'에 대해 너무 철학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오히려 그 의미의 이해가 난해해 질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오며 경험해 본 느낌상의 '행복'이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짚어보는 것이 더 나을듯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고 있는 이 ‘행복’이란 말이 우리들 삶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며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를 기성지식으로 우선 이해해 보기위해 이 말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어보고 싶다. ‘행복’의 말뜻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 여유로움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행복의 가장 큰 요소는 결국 ‘기쁨(喜)’과 ‘즐거움(樂)’, 그리고 만족감이다. 즉, 행복감의 순차적 단계를 굳이 열거 해 본다면, 우선 삶에서 기쁨을 만나고, 다음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이 두 가지 요건의 충족으로 만족감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것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도식화 해 본다면 '기쁨 + 즐거움 = 만족 => 행복'으로 나타 낼 수 있다. 즉, 기쁨과 즐거움은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저이며 이것이 만족에 이를 때 비로소 행복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쁨’과 ‘즐거움’이란 말은 비슷한 의미이면서도 묘하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가지게 되는 행복한 느낌 즉, 물질적인 행복의 요건이며, ‘즐거움(樂)’은 마음의 거슬림이 없이 흐뭇한 충족이 있을 때 느끼게 되는 ‘만족감’이다. 그러므로 ‘기쁨’은 행위의 결과로 인한 행복의 요건이며, ‘즐거움’은 행위 그 자체나 과정에서 오는 행복의 요건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열심히 일하여 월급을 받는 것은 ‘기쁨’이라 표현하며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은 ‘즐거움’이라 표현하지 ‘기쁨’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 견주어 이 글에서 느껴가는 ‘행복’을 피력해 보기위해, 행복에 대한 위의 선제적 두 요건 중에, 얻는 ‘기쁨(喜)’ 보다, 느껴가는 '즐거움'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기쁨'은 지극히 감성적이고 순간적 반향이나, '즐거움'은 보다 이성적인 느낌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옛 선현들의 ‘인생삼락(人生三樂)’과 오늘날 우리들이 지향하고 있는 삶의 ‘락(樂)’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물론 옛 선현들 시대의 삶에서 ‘락(樂)’에대한 기준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문명과 문화의 변화, 시대적 여건의 변화, 삶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대에는 그 기준이 당연히 가장 걸 맞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인생삼락’이라면 먼저 공자의 ‘삼락’을 떠올리게 된다. 공자는 인생의 ‘락(樂)’에 대한 가치기준을 학문의 수학과 사회적 교우관계, 그리고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공자는 제1락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문을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제2락을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제3락으로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溫 不亦君者乎)~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이니겠는가?! 라 하였다. 그리고 맹자는 ‘군자삼락‘에서 군자로서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가족무고(家族無故)와 부끄럼 없는 삶, 그리고 가르침으로 후학에게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의 이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1락을 ‘부모구존 형제무고(父母俱存兄第無故)~부모가 두분 모두 함께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제2락으로 ’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於人)~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고,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말했으며, 제3락으로 ‘득천하영재 이교육(得天下英才以敎育)~천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락(樂)이라 했으며, 이는 ’군자유삼락 이왕천하불여존언(而王天下不與存焉)‘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들지도 못한다 할 정도로 중히 여겼다. 또한, 노자는 인생의 락(樂)을 늘,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내 뱉는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에 중심을 두고, 제1락을 ’쾌식(快食)‘~ 즐겁게 잘 섭취하고, 제2락을 ‘쾌변(快便)’~즐겁게 잘 배출하고, 제3락을 ‘쾌면(快眠)’~ 잠을 잘 자는 것에 있다고 했다. 끝으로 순자는 ‘작은 행복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오늘날의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향복을 미리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 옛 선현들은 옛 중국의 기준과는 또 그 기준이 다르다. 선비적 정신에 바탕을 둔, 학문의 탐구와 벗들과의 교우, 자연동화와 유유자적 그리고 출생의 터전을 다시 찾아 옛 유상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회상의 ‘락(樂)’을 탐닉 하기도 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신흠’은 제1락을 ‘폐독서(閉讀書)’~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제2락을 ‘개영철(開迎輟)~문을 열고 마음맞는 손님을 맞는 것, 제3락을 ‘(명승순례)‘~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을 내세웠다. ‘신흠’의 이 3락은 안동의 ’퇴계종택‘에 있는 ’추월한수정‘에도 걸려있다. 조선 최고의 저술가 다산 ‘정약용’의 3락은, 제1락으로 ‘어렸을 때 뛰어 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돼오는 것, 제2락으로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서 돼오는 것, 제3락을 ‘혼자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벗들과 찾아가 함께 노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추사‘김정희’는 제1락으로 ‘독(讀)’~글 읽는 선비정신, 제2락으로 ‘호색(好色)’~ 사랑하는 이와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는 것, 제3락으로 ‘음주(飮酒)’~벗들과의 음주 풍류를 즐기는 것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생에 있어서 그 ‘락(樂)’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간 물질문명의 발달과 핵가족화, 장수시대, 그리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에 대한 기여도 등에 그 기준을 두게 되고 보니 옛 선현들의 그것과는 다소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현들의 ‘락(樂)’의 기준에 견주어 굳이 3락을 정립해 보자면, 제1락은 선현들의 그것과 모습은 다소 다르나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과 배움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을 타인에게 전해 주는 즐거움’, 제2락은 가족의 화친과 건강, 안정된 생활’일 것이며, 제3락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의 것을 타인에게 배풀어 줄 수 있는 기여와 봉사‘에 두게 될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생의 살아가는 즐거움(樂)’의 모습이나 형태는 시대변화에 따라 그 지향 점이 다소 달라졌다 할지라도 그 궁극적인 추구와 느껴가는 행위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다고 보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도달점은 이른바, ‘행복’이란 것이고 이는 곧 욕구의 충족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최대의 욕구충족 단계는 ‘자아실현’(말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의 경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란 말의 의미가 다양한 만큼, ‘행복’을 누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삶’에서 ‘행복’이란 것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체감은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은 그 어떤 기성품을 받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각자의 삶에서 이미 주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의 요소들에서, 요(要)는 그것을 각자 어떤 방법으로 발견하고 어떻게 느껴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행복’은 결코 얻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살아가며 스스로 느껴가는 것이라고 감히 말해 본다.


[저자약력]
계간「문장」신인 작가상수상( 2013수필가등단 )
한국문인협회 대구지부 수필분과 위원
(사)이상화 기념사업회 이사
대구市 공무원문학회장(제8대)역임
전)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현)대구종합복지회관 금빛대학 인문학 강좌 교수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