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9월 16일(목) 13:51
집 앞에는 내 집의 수호신처럼 수령이 60년이 넘고 내 팔로 한 아름도 넘는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는 10여 미터가 족히 넘어 벚꽃이 피어을 때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그 하얀 손짓 때문에 우리 마을 찾는 이라면 모두가 감탄의 표정과 함께 환한 벚나무에 눈길을주면서 자신의 갈 길로 가곤 하였다.
그렇지만 이제 이벚나무를 베기로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몇년 전부터 벚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곶간처럼 사용해왔던 사랑채가 너무낡아 그걸 허물어뜨리자 마따한 창고가 없어 벚나무 바로 옆에 슬레이트 지붕의 창고를 지었던 게 화근이었다. 창고 바닥을 콘크리트로 단단히 깔고 블록을 쌓아 벽체를 만든,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하얀 페인트칠을 한 창고는 지금 번듯한 모습으로 남쪽을 향하여 서 있지만, 콘크리트 바닥을 할 때 땅에 스며든 시멘트 독성이 그 밑에 얽혀 있는 벚나무 뿌리를 침범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 회색의 독물은 줄기를 타고 서서히 창고를 향하고 있는 가지로 올라가 이제 막 연한 초록빛으로 하늘거리며 있는 벚나무 잎으로 스며들어 어느새 잎사귀 하나하나를 흙빛으로 만들더니 여름이 가기 전에 다 떨어뜨려버렸다. 나머지 반은그래도 아직은 살아 봄이면 벚꽃을 피워내지만 아무래도 예전 같지 못하고 무더기의 하얀 색이 아닌 띄엄띄엄 회묽은 꽃으로 피다가 금방 떨어져버리고 성긴 잎사귀만 몇개 달랑거리며 병색이 완연한 고목 형상을 하고 나를 쳐다보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집앞으로 뻗어 있는 뿌리가 뒤틀리면서 물이 30동이도 더 들어갈 정도의 집 앞 측간에서 똥통으로 사용했던, 합수가 반 이상이 들어
있던 그 큰 항아리를 50센티나 위로 밀어 올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죽은 나무가지는 곧 꺽어져 내릴 듯이 껍질이 벗겨지며 이제 창고의 슬레이트 지붕을 위협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아 내 아둔하고 성급한 대처에 대한 자연의 복수여. 1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이곳에 모처럼 이삼일 간격으로 눈이 내렸다. 월출산은 눈 녹을 새도 없이 계속 하얀 모습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서니 며칠 만에 월출산 쪽으로 별이 환하다.
벌써 동남쪽 산 위 하늘에 왼쪽으로 기울어 날고 있는 방패연 같은 오리온좌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나의 산책로는 월출산에서 내려뻗은 숲과 논밭 사이로 길게난 작은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그만 오솔길이다.
어둡고, 아직도 길옆에 억새가 풀씨를 다 날리고 빗자루 살처럼 뻣뻣하게 남아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길을 따라 나는 낮게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큰 소나무들로 가득 차 검은 음영이 무섭게 보이는 진한 솔향기가 훅 풍기는 수박 등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을 지나고, 예전에 대나무가 많아 죽정이란 이름의 마을을 휘휘 돌아 다시 왔던 곳으로 방향을 잡는다. 돌아오는 길에 보름에서 삼사일 지난 하현달이 월출산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별들은 달빛에 금방 선명함을 잃어버린다. 달이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 산 위에 떠오를 쯤 나는 집 앞에 도착하였다. 대문에서 몇 발자국 걸어서 달을 쳐다보니 달은 죽은 벚나무의 뭉툭한 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벚나무 가지의 섬뜩한 음영에 가슴이 미어져 고개를 돌리니 땅바닥에 펼쳐져 있는 죽은 가지의 그림자 사이로 음울한 모습으로 나를 오려다보는 나의 달그림자

- 책 <사랑의 방명록> 중에서


저자 박석구 시인
· 영암 군서면 출신
·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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