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농장과 요코하마 해변

자하 옹의 '자하산방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1월 20일(목) 16:47
자하 류용
광활한 파인애플 농장. 몇십 년 전만 해도 사탕수수밭이었단다. 1893년 12월 제물포(지금의 인천) 항에서 굶주림의 배고픈 서러움을 모면해 보려고 배를 탔던(상투를 튼 채) 이 민 1세들.듣기 좋게 이민(移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동 품팔이였다.말발굽에 채이며 채찍(가죽끈)에 맞아가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학대와 형별 속에 그 얼마나 죽어갔던가. 그 고통, 그 처절함. 저 마카푸 바다 건너 몇 만리 동방의 나라 조선을 그리며, 임금 착취를 견디다 못해 농장에 불을 지르고, 탈출을 시도하다 죽어간 원혼.

그 고통의 시련을 떠올리면 지금의 이 풍요로운 농장의 핏빛 토양(흙 색깔)을 보는 내 마음이 서러워지나니. 흙 한 줌을 움켜쥐어본다. 그러면서 문득 킨타쿤테를 생각한다. 저 평화스럽던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주주 푸레 마을 전사였던 킨타쿤데.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 노예사냥의 덫에 걸려 신대륙으로 붙잡혀 와 시작되는 고난의 일상들. 미 해병대의 기지였던 요코하마 해변. 지금은 통제가 완화되어 들어갈 수 있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볼 수 없었던 큰 파도들. 그 파도의 유혹에 우린 다시 바다에 뛰어든다. 그 파도에 떠밀려 짜디짠 바닷물 몇 모금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아찔하다. 수영 모자와 물안경을 잃어버리고 파도에 쓸려 몇 10m 모래 언덕에 내동댕이쳐져 뱃가죽이 쓰리고 아파져도 마냥 즐거워한다.우리는 이렇듯 즐겁다고 환호하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농장.굴종과 질곡의 처절한 노동 속에서 피압박민족의 서러운 벙어리의 가슴 앓이를 했던 그들의 마음은 그 얼마나 황폐하고 피폐했을까. 과연 원대한 포부와 야망의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을까? ‘삶’그 자체가 그들에겐 고뇌인 것을,'야망'이라는 화두가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구나.

오직 배고픔(굶주림) 단순한 이 자체만을 해결하려는 그들에게 이상과 야망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논리가 어울릴 것 같지 않구나.항거하고 반항할 여력마저 상실해 버리는 ‘수용소군도’의 무기력이듯. 이럴 때 ‘체념’이라는 어휘가 어울릴 것 같구나.무기력한 이 삶이 자신의 숙명인 양 아니면 운명인 양 체념하면서 서러움과 한이 많은 한민족. 일제 초창기 연해주 간도 땅으로, 동토인 불모의 땅으로, 억척으로 일구어낸 그 땅을 뒤로 한 체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그 몇 달을 가면서 그 얼마나 또 죽어갔던가. 굶어 죽어가면서도 씨앗(종자) 만은 가슴에 품은 채. 그 집념, 그 끈질김 들로 인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도 성실하고 끈질긴 민족이라고 추앙받는 선조들.그러나 풍요의 서양문명 물질 속에 길들여지는 무절제한 젊은이들의 방종이 안타깝다. 일부분에 불과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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