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1월 20일(목) 16:52
박석구
시인
조소실 마당에서 한 여학생이 화강암을 정으로 쪼고 있다. 나는 그 작업을 날마다 조심스럽게 엿보았는데, 며칠을 걸려 쪼고 다듬고 하여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여학생의 조각상에 옛사랑을 불현듯 발견했다. 조각상은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처럼. 나를 바라보는지 아니면 다른 곳을 보고 있는지 모호했던 그녀의 시선. 엉뚱하지만 가슴을 비벼대던 그녀의 말들. 나는 언제나 도망쳤지만 돌아오면 그 자리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던 그녀.

아버지가 실직하고 우리는 가난에 처했다. 나는 서둘러 휴학하고 전경을 자원하였다. 그리고 1978년 초에 제대하였을 땐 집안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복학했으나 캠퍼스는 술렁댔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시절을 거쳐 그가 총에 맞아 죽고 난 후, 학교는 내내 민주화와 어용교수 퇴진 등의 시위로 출렁이더니 나중에는 전두환과 신현확이 물러나라는 구호와 함께 횃불시위가 계속되다가 이윽고 5.18운동이 터졌다. 나는 부모님의 간절한 만류로 시위대가 있는 거리에는 거의 나가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시골로 내려갔다. 지금도 그때 나의 변변치 못한 보신과 소심함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고향에서는 대부분 월출산 등반을 하거나 낚시를 하며 지냈다. 집에서 남쪽으로 가면 조붓한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그곳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내 방에는 남쪽으로 난 창문이 있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배롱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속에서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거나 『신동아』 같은 묵은 잡지를 뒤적이기도 했다. 제대할 때 가졌던 열정과 다짐은 가뭇없이 사라진 채였다.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수상쩍은 시대의 책임이 컸다. 나는 권태에 지쳐갔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영산호가 완성되기 전이어서 뭍 아래 마을들은 갯벌에서 게나 맛을 잡아 생활했는데, 친구들과 우물가에 놓아두었던 맛살이 담긴 대야를 통째로 집으로 들고 와 밤새워 삶아 먹기도 했다.

6월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인 의성이란 친구를 만나러 집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호동(虎洞)마을로 향했다. 그 마을은, 기다란 논길을 지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를 지나 산길을 한참 걸어 들길로 내려가면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산촌이었다. 조금 더웠지만 들길로 내려가는 소나무밭 끝에서 오줌을 갈기고 나자 바람도 알맞게 불어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벼들도 싱싱하게 자라 푸르른 빛으로 산들거리고, 밭에는 고추와 참깨 등이 무럭무럭 솟아올라 들은 온통 푸름으로 휩싸여 있었다. 마을 어귀에 가까워졌을 때 거기 길섶에서 주름진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강아지풀을 뚝뚝 뽑아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어디서 본 듯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는 그녀는, 먼 곳을 보는 듯한 멍한 시선을 들 쪽에다 주고 한 움큼의 강아지풀을 뜯어 냄새를 맡는 중이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녀는 내 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워낙 정겹고 순한 웃음이어서, 미친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황급히 스치듯 지나가는데, 달콤하면서도 잘 익은 사과향기 같은 냄새가 훅하니 밀려왔다. 나는 그때 내 몸에 밀려오던 기이한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어찔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뛰다시피 마을로 갔다.

마침 의성이는 집에 있었다. 의성이에게 그녀가 우리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내내 집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부모는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 딸을 희생시킨 것이다. 우리는 월출산에 올라가기로 했던 계획을 접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자기를 미친년인 줄 알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 깔깔거렸고 나는 동창을 못 알아봐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비로소 아까 나를 혼미하게 했던 그 냄새의 실체가 그녀의 냄새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급속히 휩쓸리게 된 데는 그때 마침 읽고 있던 『죄와 벌』의 소냐에 대한 동정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5.18에 대한 나의 부끄러움과 자책의 돌파구였다고 하고 싶지만, 그런 핑계는 위선에 불과했다. 그녀의 냄새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살 내음이 나의 추상과 관념을 일시에 쓰러뜨리며 몸을 일깨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 세 가지가 동시에 화학반응을 한 것이었다고 우긴다.

그날 밤, 그녀에게 그 잘난 모든 감정을 쏟아서 편지를 썼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가면 ‘새로운 만남이 시작될 것이다’라든지, ‘성급한 가슴 떨림’이라든지, ‘불면의 환희’라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낱말들이 떠오른다. 다음날, 그녀에게 달려가 직접 편지를 전했고 기쁜 표정을 기대했던 나는 그녀가 막연하고 허망한 얼굴로 날 쳐다보다 자기 집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맥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며칠을 서쪽으로 난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마침내 문을 연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름 내내 뒷산을 돌아다닌다든지 낚시를 간다든지 하면서 열심히 붙어 다녔다. 처음엔 나를 왜 피했느냐고 물었다.

“너는 너와 나의 차이를 몰라? 섬마을 선생이든 산골마을 선생이든 너는 유식하고 나는 무식해.”

그럼 왜 다시 만나기로 했냐고 묻자, 그때는 예의 멍한 시선을 허공에 두더니 중얼거렸다.

“너무 보고 싶어서”

광주로 돌아와 그녀에게 몇 장의 편지를 썼지만 내게 돌아온 답장은 ‘내가 너에게 편지할 때까지 기다려줘’라는 단 한 줄이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가까워졌을 때 그녀의 긴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자신의 주변 이야기와 보고 싶다는 거였지만 그 문장은 나의 글쓰기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봉투 안에서 그녀의 글이 실린 『여성동아』 <독자 문예란>을 오려 넣은 것도 나왔다. 그녀가 자리를 표현하고 싶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책도 열심히 읽고 문장도 흉내 내어 써보고 그러면서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는 듯했다.

초겨울 도갑사 뜰 앞, 하늘에 첫 별이 뜨고, 동백나무가 검은 천을 뒤집어쓸 때, 내 몸에 기대어 그녀는 물었다.

⎯ 박제된 물고기로 풍경을 만들면, 그 울음은 어떤 소리를 낼까?
⎯ 어두워지니까 절이 갑자기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지 않아?
⎯ 대나무가 울면 풍경도 따라 울어.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풍경을 울리나 봐?
⎯ 목쉰 부엉이 소리? 목쉰 도돌이표?

새봄이 되자 마지막 학년이 된 나는 막연한 불안과 함께 그녀에게서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너무도 닮아버린 그녀에게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왔거나,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말했듯 ‘그녀와 나의 차이’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서 수없이 편지가 왔지만 나는 답하지 않았다. 보고 나면 아려오는 그녀의 편지. 그러나 이미 나는 그녀의 멍한 시선에 질려있었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6월 어느 날, 그녀에게서 ‘말 없는 꽃이 될까 봐’라는 제목의 심각한 편지를 받았다. 나는 급히 내려갔고 그 마을을 향하면서 그녀와 처음 만났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리움이 그 길 따라 내내 밀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그녀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방은 어두웠고 창틈으로 스며든 햇살이 건너편 벽에 일자(一字)의 밝은 그림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늘진 방구석에 그녀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검은 원피스 차림으로 공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세찬 물결이 내 안을 휩쓸었다. 그녀는 던지듯이 내게 안겨왔고 “ 와줄 줄 알았어”를 수없이 되뇌었다.

“이젠 안 만나도 좋아. 하지만 부탁이 있어. 네 애기를 갖고 싶어. 결혼하자는 소리는 아니야. 네 애기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 갈거야.”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마이산에서 만났다. 모두들 부둥켜안고 안부를 전했다. 그날 의성이도 참석했으나, 그녀가 나의 동창이라는 것과 거기에 참석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루 내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 안에서 의성이가 이미 술에 찌들어 있는 내게 다가왔다.

“걔가 너 때문에 늦게 결혼했어. 스물여덟 살이나 돼서. 니가 떠난 후, 집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더라. 모든 청혼을 물리치더니 서울에서 손이 오자 갑자기 가더라. 차라리 멀리 간다고.”

“원망은?”

“내가 너한테 원망했지. 걔가 했겠니?”

“잘 산대?”

괜한 물음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남편에게 푸대접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지금쯤은 글쓰기를 아주 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혹시 시인이나 수필가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치려고 의성이를 끌고 버스 통로로 나가 한참 열기가 달아오른 버스 안 춤판으로 신나게 뛰어들었다.

추억은 한정되고 늘 잊히기 마련이며, 어떤 계기로 불현 듯 떠오르지만 결국은 다시 잊게 되고 세월은 간다.

[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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