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정신으로, 널리 영암군민을 이롭게 하겠습니다!

지방선거 특집 <뻔뻔한 인터뷰>
예비후보 릴레이 초대석 ① 배용태 후보

유우현 기자 yailbo@daum.net
2022년 01월 28일(금) 16:10
손가락 하트를 해달라는 요청에, 배용태 후보는 '"군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사진이라서 말은 안들린다"고 기자가 웃자 배 후보는 "진심은 항상 전달 된다"고 했다.
<편집자주>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언론사들은 한창 바쁜 시기다. 그래서인가. 이 후보 저 후보, 이 신문 저 신문, 죄다 같은 소리다. 같은 후보가 같은 사진으로 같은 답변을 한다. 지루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어서 그런 거 따질 게 아니다’는 근엄한 소리, 넣어두시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지루함’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기자도 지겨운데 독자들은 오죽할까. 편두통이 몰려온다. ‘읽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감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거철 ‘뻔’한 사람들과 ‘뻔’하지 않은 얘기를 나눈다. ‘뻔뻔’한 인터뷰다. 첫 번째 주자는 배용태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다.

- 어제 출마선언할 때 표정이 유독 굳어 있던데. 출마에 대한 부담인가.
그럴 리가. 공무원들이 원래 좀 딱딱해서 그렇다.(웃음)

- 아직 당선 경력이 없다. 이유가 뭘까.
나는 30여 년을 공직자로 살았다. ‘행정의 세계’에 익숙하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정치의 세계는 상당히 달랐다. 물론 ‘정치행정 일원론’도 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정치와 행정은 아주 다르다.

행정은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치는 사항 별 최고 가치를 우선으로 삼아 모든 것이 매몰된다. 오직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구조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가 일반 행정과는 많이 다르다.

- 고향 영암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랄까. 내 고향은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다. 그 풍경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고개를 들면 월출산이 보이고 시선을 내리면 영산강이 나를 적셨다. 타지에서 지내면 누구나 고향 생각이 날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삶이 힘겨울 때면 어김없이 고향 집 마당에서 굽어보던 월출산과 영산강이 떠올랐다. 그 힘찬 강과 산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다시 삶의 신발 끈을 조여 맬 힘이 생겼다. 삭막하던 세상이, 그럭저럭 살아볼 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 형제들과 찍은 어린 시절. 가운데가 배용태 후보.

-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나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생활도 착실하게 했었다. 말썽꾸러기는 아니었다. 부모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가정교육에 엄격하시고 늘 남을 배려하셨다. 특히 아버지는 책임감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이 내 공직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우리 큰집 뒤엔 커다란 ‘말무덤’이 있었다. 거기서 숨바꼭질도 하며 자주 놀았다. 그 말무덤이 지금 보니까 고분이더라. 어린 애들이 뭣도 모르고 고분에서 논 거다. 땅을 파면 접시같은 것도 나왔는데, 그때는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보니까 귀한 문화재였다. 어릴 때를 떠올리면 그것이 자주 생각난다.

- 인간 배용태는 어떤 사람인가
글쎄, 세상에서 가장 알기 힘든 게 자기 자신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보람이라는 두 글자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사람’이랄까.

- 조금 거창한 감이 있는데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웃음) 사람은 결국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남기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산다. 특히 공직자는 지역의 품격을 높이고 지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보람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홍익인간 정신과 비슷하다. 널리 지역민을 이롭게 해야 한다.

- 정말 뼛속까지 공직자다.
맞다(웃음)

- 공직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79년 즈음이었나. 목포에서 전투경찰로 군 복무를 했었다. 어느 날, 초병으로 근무하다가 일출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어둠 속에서 바다를 가르며 해가 떠오르는데, 그 바다는 영산강이 더 큰 대양으로 떠나는 바다였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내 마음속에도 어떤 결심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행정고시 도전이었다. 행정학과에 입학이야 했지만 처음부터 고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풍경이, 대양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을 크게 뒤척인 영산강이 내게 푸른 꿈을 심어줬다. 빨리 성공해서 부모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은 고시밖에 없었다.

- ‘뼛속까지 공직자’는 취미도 독서일 것 같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취미를 붙여왔다. 요즘엔 주로 산책과 등산을 한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고, 둘레길을 산책하는 정도다. 예전엔 독서도 많이 하기는 했다. 요새는 사설과 칼럼을 읽는 재미로 산다.

- 노래방 18번은 무엇인가
요즘 내 ‘최애’곡은 최석준의 ‘천년화’와 하춘화의 ‘영암아리랑’이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나훈아의 ‘영영’ 이나 최성수의 ‘동행’같은 것도 불렀다. 사실, 몇년 전까지도 종종 부르곤 했다. 그런데 노래교실에서 부르면 분위기가 너무 쳐졌다. 당시에 강사가 추천해 준 곡이 최석준의 천년화다. 노래는 못 부르지만 천년화만큼은 곧잘 부른다.

둘째 아들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아들 내외 및 부인 이상숙 여사(사진 오른쪽)와 함께 ‘찰칵’

- 가족들에겐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남편인가
평가가 좋지 못한 가장이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고, 또 결혼까지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아내가 책임졌다. 나는 공무원이란 핑계로 서울과 지방을 다녔기에 가정에 전념하지 못했다. 공직자로서 원칙과 책임이 중요했다. 나의 다른 생활보다 일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족이란 공동체에 양해를 구하는 순간이 많았다.

가족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특히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 마음의 짐이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잘하고 싶다.

- 조금 '뻔한' 요청이지만, 군민들께 한마디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영암은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 역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을 풍요롭게,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만 누리는 게 아닌, 모두가 잘 사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위해 군민들께서 동참해 주시리라 믿는다. 그것이 지역의 ‘격’을 높이는 일이다.

군민들께서 내게 기회를 주신다면, 백년 영암의 초석을 닦겠다. 물론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급'도 못된다. 하지만 나만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중앙과 지역을 오고 간 30여 년의 행정경험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을 조화롭게 만들겠다. 각계각층의 리더들을 잘 아우르겠다. 영암군의 레일을 새롭게 까는 것이다. 기차를 운행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지만, 운행하게끔 길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영암엔 없는 것이 없다. 최고의 국립공원 월출산이 있고 문화의 원류인 영산강도 있다. 양질의 영토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특산물도 있고 조선업을 비롯한 정통 산업도 강하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온 영암군민들이 계시다. 이렇게 멋진 고향을 위해 나 또한 최선을 다하겠다.
유우현 기자 ya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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