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이야기 (2)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4월 06일(수) 16:00
김오준
논설주간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 본관은 안동 김씨요. 세거지가 장의동인 장동파다.

조선의 23대 왕 순조 이공의 왕비 순원왕후 김씨는 김삿갓의 고모뻘 되는 집안 어른이다. 순원왕후는 1789년(정조 13년) 5월 15일에 한양의 서소문 밖 양생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안부원군 서인 노론 시파 김조순이고 어머니는 청양부부인 심씨다. 어린 시절부터 품행이 방정하고 매우 영민하여 가정교사의 가르침을 받아 여계와 내훈 등 여러 교양서적에 심취했고 스스로 학문을 깨우쳤다. 아버지 김조순이 그 당시 여식에게 공부를 시킨 걸 보면 선견지명을 가진 라 여겨진다.

순원왕후 김씨는 순조와의 사이에 효명세자와 세 딸을 낳았고 영의정을 3번 지낸, 60년 세도정치 안동김씨의 대부 김좌근은 순원왕후의 친 동생이요. 이후에도 안동김문에서 헌종비 효현왕후.철종비 철인왕후를 배출해 가문의 세를 과시했다.

안동 김씨는 1636년 병자호란 때 김상용이 강화도에서 순국하고 아우인 척화파 김상헌은 주화파 최명길이 쓴 삼전도 항복비문을 찢은 죄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뒤에도 절의를 끝까지 지킴으로서 충의와 의리를 고수한 조선 최고의 상징적 대쪽 선비로 일약 자리매김 되었고, 16c 후반에 이르러 안동 김씨는 조선 제1의 명문가로 비약적 발전을 했다.

이러한 가문의 역사적 배경의 중심인물은 순원왕후의 아버지 김조순이다. 정조 이산은 13살 연하인 김조순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각별히 보살펴 주었다. 1785년(정조 9년) 20세에 정시문과에 김조순이 급제하자 정조는 크게 기뻐하며 ‘낙순’이라는 이름을 ‘조순'으로 개명케 했다.

정조는 경주김씨. 풍산홍씨.달성서씨 등이 학맥과 혼맥으로 엉켜진 노론 벽파들의 일당독재를 견제키 위한 수단으로 당시에는 비주류였던 안동 김씨 가문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파인 김조순을 중용하면서 세자인 순조의 스승으로 삼았고 확실한 관계설정을 위해 사돈을 맺고자 했다.

야사에 의하면 나이 어린 순조가 김조순의 집에 갔다가 김조순의 첫째 딸 김씨를 보고 그 용모와 언행에 첫눈에 반해 아버지 정조에게 "김조순의 딸이 아니면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졸랐다 하니 순원왕후의 미모가 출중했으리라 여겨지며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가 낳은, 23살에 요절한 효명세자가 조선의 왕자 93명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미남자였다는 기록도 그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김삿갓은 1807년(순조7년) 음력 3월 13일에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하여 1863년(철종13년) 음력 3월 29일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에서 사망하였다. 김병연이 김삿갓으로 부르게 된 것은 일생을 대부분 삿갓을 쓰고 다니며 조선팔도를 방랑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나 5세 되던 1811년 관서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대과에 입격해 입신양명을 꿈꾸던 병연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병연은 16세 때 향시에 응시하여 향시의 과제가 '역적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주제에서 "선 대왕이 보고 계시니 너는 구천에도 못가며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도 마땅하리라. 네 치욕은 우리 동국 역사에 길이 길이 웃음거리로 남으리라"는 김익순이 고을의 사또로서 비겁하게 반란군에 항복한 죄를 일필휘지로 지적해 당당히 장원을 하게 되었다. 병연은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 인줄도 모르고 그냥 필가는 대로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던 것이다.

김익순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과 항렬이 같은 안동김씨 무인으로 일찌기 무과 급제로 승승장구 해 47세에 종3품 선천 부사로 부임하자마자 홍경래의 난을 만나 술에 만취해 반군에게 항복, 목숨을 부지하고 이 사실을 모면하기 위해 홍경래의 부장 김창시의 목을 베어 나라에 바쳤으나 항복한 사실이 곧 발각되어 역모죄로 48세에 참수형를 당한 위인이었다. 김익순은 사후 100년이 지난 순종 때 이완용의 상소로 복권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 까닭이 없는 병연은 집에 돌아와 의기당당한채 향시의 전말을 모친에게 고하니 모친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마침내 눈물로서 병연에게 17년 동안을 감춰온 가문과 조상의 비밀을 자식에게 고하니 김익순이 자기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되었고 병연은 식음을 전폐하고 긴 방황 끝에 방랑을 결심하게 되었고, 하늘을 쳐다볼 면목이 없다 하여 큰 삿갓과 죽장을 만들어 방랑생활을 시작해 김삿갓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김삿갓은 사서오경을 독파한 보기 드문 수재였다. 김삿갓의 발길이 머무는 곳곳마다 재미있는 위트와 풍류를 남겼다.

김삿갓이 8도 유람을 할 때 어느 고을에 이르니,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때는 따뜻한 봄볕에 마침 강가의 버들강아지가 한창 피고 있기에 아이들을 보고, 김삿갓은 "애들아, 버들강아지는 강아지인데 왜 울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뒤돌아보면서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답을 하지 않으냐고 다시 물으니, 한 아이가 "솔방울은 방울인데 왜 울리지 않아요?"하고 대답하였다. 그 기발한 대답을 듣는 순간 김삿갓은 깜짝 놀랐다. 그 누구와의 문답에서도 지지 않았던 김삿갓이였지만 이 어린 아이의 놀라운 답변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또 다시 새롭게 배운 것이다.

김삿갓은 또 어느 자그만 암자에서 공허라는 무명의 스님을 만나 자신의 학문을 새롭게 점검하고 추스렸다. 두 사람이 나눈 그 유명한 문답의 댓귀들이다.

아침에 등산하니
구름이 발밑에서 생기고(김립)
저문대 황천에서 물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네 (공허)
간송이 남쪽으로 누었으니
북풍인줄 알겠고(김립)
대 그림자 동쪽으로 향 했더니
해가 석양인줄 알겠네(공허)
절벽은 비록 위태로나
꽃은 웃으며 서있고(김립)
따뜻한 봄은 가장 좋은데
새는 울며 돌아가네(공허)
녹수에 그림자 어렸으나
옷은 젖지 않았고(김립)
꿈속에 청산을 밟았으나
다리는 아프지 않았네(공허)
청산을 샀더니 구름은
공짜로 얻었고( 김립)
물이 있으니 고기는
저절로 오네(공허)
돌이 천년을 굴러
방금 땅에 도착하고(김립)
높은 봉우리 한척이
마천루일세( 공허)
술이 있으면 어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김립)
돈이 없어도 근심 안하는
그대가 부럽소(공허)


이처럼 공허가 한 수 읊으면 그에 맞는 댓귀를 즉시 응답하는 김삿갓의 재능과 재치가 공허로 하여금 그의 학문적 수준에 감탄하게 하였고, 김삿갓 역시 공허가 한낱 염불만하는 산승으로 알았는데, 구구절절 토해내는 기발한 싯귀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만물에 달관한 두 사람의 표현에 서로는 마침내 좋은 시우와의 만남으로 여겼고 김삿갓은 더욱 학문에 매진했고 그의 발길이 머물었던곳에는 온갖 해학과 풍류가 배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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