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측11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4월 07일(목) 15:39

요즘의 교통수단은 거의 자동차에 집중되다시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량 대수가 이미 2천만 대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15년이 훌쩍 넘어간 똥차를 아직도 몰고 있는 나를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게 회의적일 때도 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던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모든 길은 항상 연하여 있고 어느 순간에는 갈림길이 있었으나 지름길로 가고자 내가 택했던 삶들이 이제 생각해보니 늘 힘든 길로만 걸어왔던 것 같다. 그나마 이런 똥차라도 굴리고 다닌다는 게 다행이도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똥차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비록 보닛의 오른쪽 가장자리나 왼쪽 뒷바퀴의 흙받기 부분이 칠이 벗겨지면서 녹이 슬고 엔진소리가 조금 요란하긴 하지만, 홍삼을 첨가물로 넣어 제조한 엔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속 160km로 달려도 투정 한번 한 적이 없고 아직까지도 잔고장도 난 적이 없다. 외롭고 쓸쓸한 내가 어딘가 가고 싶을 때, 아무런 투정질 없이 가고 싶은 곳까지 데려다주는 내 차가 아직은 너무 좋다. 긴 거리를 달리면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십 몇 년을 서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던 내가 청소년 시절에 온 가슴을 던져 관통했던 문학을 한답시고 요사이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울을 올라갈 때면 천안에서부터 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아파트와 공장, 거쳐서 가는 도로 위의 수많은 차량들 때문에 삭막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하기야 이런 곳에서 부딪히며 사는 것이 훨씬 풍부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지금도 어느 누가 풍족한 보수로 서울에서 살겠냐며 권유를 한다고 해도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처음 서울에 가려고 고속버스를 이용했을 때는 그냥 터미널로 가 매표를 하여 버스를 탔었다. 그런데 어쩔 때는 가려는 사람이 많아 내가 가려는 시간의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모임에 늦게 도착했다. 어렵사리 탄다고 해도 맨 뒤의 좌석밖에 없어 그곳에 앉으면 차의 엔진소리는 요란하고 파인 도로를 지나칠 때 덜컹거림이 유난히 심했고 TV시청은 언감생심이었다.

생각 끝에 예매를 하기로 했다. 서울 가기 하루 전, 책상에 앉아 PC를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버스터미널을 치고, 가려는 시간대의 차에 마우스를 클릭하니 그 시간 이후의 차들이 주르륵 펼쳐지는 게 아닌가. 참 대단한 순간이동이라고 생각하며 그 중 내가 가고자 하는 시간대에 있는 차 하나를 골라 ‘예매’를 클릭하자 잔여 좌석과 예매된 좌석이 차 안 생김새 따라 도표로 그려져 있었다. 어떤 좌석이 좋을까? 28개의 좌석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차에 올라서 바라보는 운전석 쪽은 두 좌석이 나란히, 출입문 쪽은 좌석이 하나로만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운전석 쪽은 앞좌석만 예매되어 있는데 출입문 쪽 좌석들은 뒷좌석만 남고 벌써 예매가 완료되어 있는 게 아닌가. 언제부터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게 됐을까. 누군가 낯선 이와 같이 있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업을 위주로 한 정착민의 사회에서 갑자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는 세월을 겪은 동안 대부분 사람들이 도시의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까닭일까. 문명의 한가운데 가장 많이 늘어난 자동차와 아파트를 떠올리며 나는 운전석 쪽 창측11을 예매했다.

7월의 버스에서 바라보는 주변 산들을 감싸고 있는 초록도 자세히 보면 그냥 초록이라고 부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연초록, 초록, 진초록, 혹은 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짙푸른 초록들이 뒤섞여 푸르고 푸르게 보이는 산인 것이다. 이런 초록의 나무들은 지금 한창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몸피를 키우는 중이다.

나는 창측11 좌석에 앉아 몸을 깊게 묻으며 이 좌석의 예매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선 창을 통해 지나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호오의 평점을 내리기도 하거니와 저런 경치면 한번쯤 와봐야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틀어놓은 TV를 통해 대충 어디쯤 왔는지 도착시간은 언제쯤인지 알 수도 있고, 차 중간의 아늑함도 3시간이 넘는 여정에 가끔 나타나는 불편한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촉매인 것이다.

더구나 내 옆에는 황토색 개량한복 차림인 포근한 50대 초반의 여인이 앉아 있다. 내가 먼저 자리에 앉아 내 몸에 편안하게 의자의 기울기를 조절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와 미소를 머금고 눈인사를 주고 살포시 자리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그녀는 바나나우유를 꺼내 빨대를 꽂고 볼우물을 만들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내를 가로지르다 걸린 신호등 때문에 착 갑자기 서는 바람에 사례가 들렸는지 기침과 함께 입안에 머금고 있는 우유를 그녀의 발 앞에 살짝 뿜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분비물은 내 바지의 오른쪽 허벅지 부분에도 튀겨 동그란 물집 모양을 여러 개 만들었다.

“미안합니다”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가방 속에서 황급히 물티슈를 꺼내어 내 허벅지의 우유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닦고 있는 그녀의 손을 밀쳐보았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티슈 한 장을 다시 뽑아 더 열심히 자국을 지워 나갔다. 아, 그런데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허벌지를 눌러대는 그녀의 손길에 아랫도리가 서서히 일어서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지나가는 여인을 보며 아무리 음험한 생각을 해도 도무지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더 쪼그라들기만 하던 녀석이 웬일이란 말인가. 그녀는 바지의 가운데가 봉긋 솟아있는 것을 눈치를 챘는지 약간 얼굴을 붉히더니 서둘러 자국을 지우고 고개를 숙여 차 바닥을 훔쳤다.

“서울을 가시는 겁니까? 아니면 광주에 일보러 오신 건가요?”

한참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분위기를 바꾸보려고 내가 물었다.

“상담차 가고 있어요. 제가 조명 쪽 인테리어 소품을 하거든요”

“무슨?”

“말하자면 거실이나 안방의 스탠드나 천장, 벽걸이용 조명기구를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한지로 만드는 일이에요. 손이 많이 가지만 서울에 큰 조명기구 판매처가 관심이 있다며 만나자고 해서요.”

“손재주가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팸플릿을 꺼내 내게 건넸다. 4면으로 된 팸플릿의 첫 장은 붉은 바탕의 한지에 ‘000의 한지조명’이라고 그녀의 이름을 딴 상호가 금색 글씨로 양각이 되어 있었고, 2,3면은 그녀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었다. 별과 달 모양, 해바라기나 나뭇잎 모양 등의 한지로 만든 조명등들이었다. 은은한 빛을 머금은 그 등들은 하나하나가 서로를 비추듯 섬세하게 배치되어 아름답구나 하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일어날 만했다. 4면에는 그녀의 사진과 경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멋집니다”

아마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그녀는 디자인학과를 나와 조그만 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자신이 미워 그만두고 한지공예를 하신 어머니의 권유로 이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내 직업이 노가다라고 했더니 그녀는 웃었다.

“나는 몸 쓰는 사람이 좋더라!”

그녀의 볼우물이 앙증맞게 파였다. 남편이 일찍 암으로 죽었다고 하면서 시누이가 ‘남편 잡아먹은 년’ 이라고 떠들고 다닌다고도 했는데 그땐 슬픈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에게 그러듯이, 아마도 그녀는 ‘나’를 특별하게 의식한 것 같진 않고 편하게 독백하듯 이러저런 맺힌 애기를 쏟아냈을 것이다. 나도 그녀에게 그랬으니까. 때론 낯선 사람에게 우리는 뜻밖에도 가장 정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외로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모임은 토론 모임이라 늘 진지하다. 진지한 것은 지루한 거의 유사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하품이 나올 것 같아 입을 가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준 팸플릿을 뒤적거렸다. 순간 4면의 경력소개란 아래에서 메일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이성이 인연으로 다가오는 것이 일생 중 얼마나 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마음이 아플 때 누군가가 어루만져 주라고 신이 보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걸 나뭇잎이 가장 먼저 알고 있듯이 나의 나뭇잎은 내쉬는 숨들 속에 이는 미묘한 파장입니다. 누군가 생각이 나면 숨은 짧아지고 누군가 떠나면 길어지는 숨. 저는 요즘 간간히 짧은 날숨으로 보내는 시간 많아짐을 느낍니다.

저는 원래 버스를 타면 이성이 내 옆에 앉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이성의 대부분은 할머니였고 동성도 맘에 드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에전은요. 매표소에서 표를 내줄 때 사고가 날까봐 동성끼리 묶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면 어때서?

당신을 만난 건 초록의 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한지에서 배어나오는 물빛으로 불빛을 가두어 은은하게 조율하듯이 초록은 꽃들을 더욱 꽃답게 포용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쉼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록이 가기 전에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지금 제 마음입니다. 편지를 주십시오.’

엊그제 동창들 모임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새벽에 갈증이 온몸을 훑어 내리자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동창 한 놈이 ‘이제 살만 하니까 온몸에 병마 가득하다’고 한탄한 때문이었을까. 그 말을 듣고 번뜩 나이를 먹는 나의 한심한 처지가 미워서 그랬을까. 입 속으로 부은 소주가 서너 병은 된 것 같았다.

물을 숨도 쉬지 않고 입으로 들이붓고 나자 갑자기 며칠 전 어느 수필지에 보낸 글이 생각났다. 몇 번을 퇴고한 글을 보낸다고 보냈는데 초고를 보내버린 생각이 난 것이다. 나는 PC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러 ‘보낸 편지함’을 열었다. 그런데 ‘원고 송부’ 제목 위에 ‘인연’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언제 누구에게 이 메일을 보냈을까. 열어보니 어젯밤 11시에 보낸 걸로 보아, 술에 취해 그녀에게 이 편지를 보내버린 것이다. 화끈거린 얼굴을 쓰다듬으며 수신확인란을 보니 아직 그녀가 이 편지를 열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발송 취소’를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여명은 이미 사라지고 청소차가 골목을 들이닥치고 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날리며 나를 관장하는 신이 그동안 어렵게 살아왔으므로, 나를 창측11에 앉히고 가슴이 행복해지는 3시간의 여정을 주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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