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시대, 종자생산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6년 05월 20일(수) 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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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사거리 모퉁이에 걸린 현수막 문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해 벼 등숙기 고온다습한 기후로 종자의 충실도가 떨어진 것에 따른 농가 안내 현수막이다. 국립종자원은 정부 보급종뿐만 아니라 자가채종 종자까지 전 품종에 대해 발아시험을 실시하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예년과 다른 볍씨 발아 지연 상황에 대처하느라 올해 국립종자원의 봄은 유난히 바빴다.
종자의 발아세가 1~2일 늦는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국립종자원은 농촌진흥청, 도 농업기술원 등과 협업하며 농가의 안정적인 육묘를 위해 발아시험 지원, 올바른 싹틔우기 지도 등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품종별 발아 분석, 관계기관 회의, 농가 홍보 등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다행히 지금까지 벼 육묘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상기온 뉴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봄 파종이 시작되는 4월부터 일교차가 10도를 넘나들었고, 일부 지역은 영하권까지 떨어지며 냉해 피해도 발생했다. 올여름도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이라는 기상청 전망이 이어지면서 올해 농사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 기후위기와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상기온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으며 그 강도 또한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를 주지만 동시에 냉정하기도 하다. 인간조차 자연 앞에서 무력한 존재인데, 하늘 아래 그대로 노출된 농작물은 오죽할까.
창립 50주년을 넘어선 국립종자원은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종자생산체계를 고심해야 할 때이다. 폭염, 한파, 가뭄, 집중호우, 태풍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은 안정적인 채종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불안정한 기상 패턴은 생육 저하, 병충해 확산, 수량 감소로 이어져 고품질 우량종자 생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후적응형 신품종 개발이다. 폭염과 가뭄, 병해충에 견딜 수 있는 내재해성·내병성 품종을 꾸준히 육성해야 한다. 온난화로 병해충의 종류와 발생 시기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기존 품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도 생존 가능한 유전형질을 찾아내 신품종을 꾸준히 개발해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지능형 종자생산체계 구축이다. 이제는 단순히 적기에 파종하는 것만으로 안정적인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육 주기를 분석하고, 파종과 수확 시기를 예측하는 과학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원원종·원종·보급종 전체에 대한 수확예측 모델링과 데이터 기반 채종체계가 정착되어야 한다. 현재 국립종자원이 한국전자기술원과 협업해 자동 수확예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세 번째는 종자검사 기준의 탄력적 운영이다. 우리나라는 점차 아열대성 기후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과거와 동일한 수준의 완벽한 종자를 생산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변화한 환경에서 생산된 종자를 과거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일정 수준의 순도와 발아력이 확보된다면 종자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자연은 다양성을 통해 진화해 왔다. 단일한 환경, 단일한 품종만으로는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기후위기의 시대일수록 종자의 다양성과 적응력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지만 동시에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식량안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종자생산체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안전은 성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라는 말이 있다. 변화에 대응하지 않은 채 익숙한 질서만을 고집한다면 잠시의 안정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퇴보하게 된다. 변화하는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