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수필이란 고주孤酒- 3부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6년 08월 28일(금) 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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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소재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조합해 조직화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다. 문학의 발생은 문자의 발명보다 훨씬 전의 일로 풍요를 기원하는 등의 주문 기도에서 기원한다. 문자가 생겨난 뒤에도 책에 의해 문학이 널리 유포되게 된 것은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후부터이다.
문학이 사회를 묘사하고 인생을 그리고 있는 이상, 그것이 사회적 산문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문학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또한 사회에 영향을 준다. 작가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며 독자도 또한 같은 사회에 속해 있다. 작가는 그가 생활하는 시대와 사회를 표현할 것을 암암리에 독자들에게 요구받고 있으며 그 요구에 응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으로 되어 있다.
1. 내가 다시 글을 시작할 때
나의 등단은 2011년『에세이스트』이다. 그동안 ‘늘 푸른 아카시아’라는 광주고 문예반 OB 카페에 신변잡기의 글이나 어쭙잖은 시를 가끔씩 올렸는데 김종완 발행인의 (같은 회원) 요구로 ‘유쾌한 용기’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였다. 그때 조정은 주간은 ‘띄어쓰기’‘맞춤법’‘문단 나누기’‘문장의 배열’‘문장의 긴 열거’에 대해서 많이 고치고 다듬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문학을 한다고 했던 시기가 고등학교 문예반이었고, 그 이후로 대학교 때를 제외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장은 고등학교 시절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카페에 싣기 시작한 추억을 공유하는 글을 썼는데 그것이『추억의 사립문』이다.
2001년 처음 카페를 만들고 4, 5년쯤 후에 『동연』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했는데 거기 발문을 내가 썼다.
몇 년 전, 함박눈이 펑펑 오는 한 겨울에 우리는 만났다.
만남의 절편에 서니, 정신의 황폐화에 일조한 산업화와 자주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군사주의의 한가운데서, 부대끼고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이것들이 찢겨진 달력처럼 무심해질 무렵 10대였던 우리는 어느덧 40대였다.
(···)
기억의 지도를 더듬어 보면, 그 당시 ‘광주고등학교 문예부’ 일원들은 전후세대의 영향을 지독히도 받고 자랐다. 전쟁 후의 암담한 허무와 피폐된 정신의 어두운 언어들이 우리에 고스란히 밀려왔고 우리는 전율하여 받아들였다. 그때 막 목총 훈련으로 시작된 군사문화의 멋모르고 억지스러운 갈피를 추스르면서, 사춘기 언저리의 이성에 대한 혼란이 소란스럽게 합쳐져, 절망과 폐허, 덧없는 꿈과 넋, 그리움과 사랑, 고독과 존재 등에 대하여 어쭙잖은 어휘를 남발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문득 5.18을 거치면서 몇몇은 그 정서를 몰아세워 문단의 한가운데에 정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산업의 팽창과 더불어 먹고살기 위해 별의별 직업 속으로 튀밥처럼 튀어져 사라졌다.
미미한 감정이 활발한 것이다.
새로운 존재로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동안 카페에 모인 글들을 어설프나마 정성으로 정리하여 문집을 내놓는다.
우리들 어느 누구도 글의 서툼에 대한 발길질은 달게 받아들이나 소중함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세월의 달빛에 젖어 흙 속의 낙엽이 될 뻔한 가슴들이 비로소 집착하는 작은 신화를 이해하소서
-「발문」부분
2.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
수필은 논픽션이지만 나는 시의 ‘상상력’, 말하자면 좋은 시가 관통하는 사물과 풍경의 이해와 관찰력이 같이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딴지처럼 보이겠지만 일련의 가요들에게서 보이는 가사는 시보다 가슴을 움직인다.
예를 들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라든가‘사랑해라는 그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나요. '라든가‘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등이다.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인가.
또한 소설은 픽션이지만 녹아 있는 구성력, 문장의 배치, 복선, 읽고 난 뒤의 다가오는 감동 같은 요소가 있어야만 독자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별로 못마땅한 구석이 있겠지만 나의 수필 쓰기는 다음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편이다.
첫째, 관념적 언어를 되도록 줄인다.
공허; 외롭다
귀가; 집으로 돌아오다
반추; 되새기다
번뇌; 괴로워하다
산화; 태우다
애련; 그립다
예감; 다가오다
자학; 가슴이 아프다
탄생; 태어나다
태초; 처음에
휴식; 쉬다
등과 같이 되도록 한글의 모습으로 쓰기를 원한다.
그렇게 쓰는 것이 글의 맛이 더 좋다고 느낀다.
둘째,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것을 구성할 때, 그 이야기와 비슷하거나 다르더라도 주제에 맞는 이야기 하나를 더 얹히도록 해 본다.
어떤 분들은 한 이야기와 한 주제를 강조하지만 나는 글에 약간의 복선이 있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 구성을 좋아한다.
셋째, 술을 마신다.
어떤 이야기가 글로 쓰고 싶을 때, 나는 누군가와 술을 마시며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겠냐는 뜻을 내비친 것을 자주 한다. 그 사람의 말 중에 어쩔 때는 대단한 내용이 다시 그려진다.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 술은 소통을 하는 매개체 중에 질리지 않는 최고의 음식이다. 단, 글을 쓸 때는 술 취한 상태에서는 절대 쓰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은 다음날 폐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쓴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이 소재는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만약 당신에게 이 감정이 사라진다면 글을 쓸 생각을 갖지 마라. 사랑은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다섯째, 글을 마무리할 때 이야기 내용을 다 설명하여 끝내기를 싫어한다.
이것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방법이다. 글을 읽고 그 뒤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이바구를 많이 듣는 경우가 좋다. 그리고 여운은 문학적으로 상당한 요소이다.
기행문이나 평론 같은 문학은 다르겠지만 수필에서는 시도할 만한 것임이 틀림이 없다. 당신의 인생도 아직 멀었다.
여섯째, 글쓰기에 게으름을 피운다.
이번에는 글을 꼭 써야지 하는 마음을 버리면 언젠가는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때가 찾아온다. 노는 시간이 숙성의 시간이라고 자조하면 아등바등 써야겠다고 머리를 쥐어짜는 수고도 덜거니와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삶에도 도움이 된다. 거의 1년에 서너 편이 고작이다.
일곱째, 가끔 필사를 한다.
좋은 글을 만나면 가끔 필사를 해 본다. 그 문인의 문장이 내게로 스며들 때가 있다. 특히 유명한 시인이나 소설가를 보면 자주 필사를 해서 글쟁이로 성공한 이가 많다. (안도현, 신경숙 등) 또한 필사를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다가온다.
시 한 편 읽어보자.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안상학「아베생각」부분
필사를 하면 이 기막한 반전도 같이 온다.
여덟째, 글에 ‘똥’같은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어떤 수필을 보면 기막히게 수려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고 이 세상이 다 ‘아름다운 강산’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 아름다운 언어만 있다면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언어들에 지겨워서 다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의 언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의 함성, 깊은 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몸부림과 푸념 같은 말은 절대 아름다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글쓰기를 할 때 욕이나 사투리를 가끔 첨가하기도 한다. 붓 가는 대로 쓰는 이야기, 자기 자랑, 오카리나 연주 이야기가 글에 비치면 거의 그런 글은 읽지 않는다.
이상, 나의 글쓰기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았다. 자랑하려고 이런 주제를 내놓았나 하는 비꼬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충분히 있었지만 그냥 지면을 채우기 위한 꼼수였을 가능성이 많다. 이상.
- 책 <늙은 시인들의 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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