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

칼럼
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
  • 입력 : 2021. 03.08(월) 13:03
  • 영암일보
발행인 김백호
영암일보 대표이사/법학박사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春風)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는 말이다.

명대(明代)의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춘풍(春風)’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고, ‘추상(秋霜)’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엄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을 얼마나 공평무사한 잣대로 판단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뜻을 담은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액자를 선물했다.

작금 국민 주거 안정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일부 직원들이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중 최대규모인 광명과 시흥 신도시 사업지역에 100억 원대의 토지를 투기성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나라가 시끄럽다.

권한과 정보를 독점한 LH조직 일부 직원들의 국민 배신행위는 추하다 못해 가슴 아프다. 그리고 언론 보도를 보면 그들은 반성은커녕 아주 당연한 양 변명한다. 보기 민망하고 부끄럽다. 춘풍추상은 없고 그야말로 ‘新내로남불’이다.

1990년대부터 요즘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회자된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상대의 아전인수격 언행을 꼬집는 말이다. 사회 지도층은 내로남불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는 더 엄격한 춘풍추상이 되어야 하는데 왜 작금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을까.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 ‘춘풍추상’과 반대되는 ‘내로남불’은 나의 허물에는 관대하고 남의 허물에는 더 엄하게 대하는 이중 잣대이다.

이러한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의 ‘신의 직장’이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LH직원은 “LH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나”, “내부정보를 활용한 투기인지, 공부를 토대로 한 투자인지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국민 정서는 그들이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적 반응이다. 평생 집 한 채 장만을 위해 잠 못 이루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천정부지 치솟는 물가에 시름하고 있는 일반 국민에게는 그들의 변명에 비린내가 진동한다.

여권은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고, 야당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관련 전 기관의 임직원 전수조사를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연이어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정세균 총리도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헌신해야 할 공공기관의 직원이 이런 부적절한 행위로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한다. 국회에서는 업무 중 취득한 정보로 이득을 챙기면 최대 5배까지 벌금을 물리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서민과 청년의 분노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다.

LH사태로 표출되는 공분은 부동산만의 문제를 넘어 현재 우리 사회의 불공정에 대한 분노라고 본다. 취업과 승진 등 치열한 경쟁에서 권력과 정보를 가진 자로 인해 자신이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 사회 전반에 깔리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을 살 수 있는 희망마저 사라지고 투기성 투자 현상이 만연한 것은 서민과 청년의 분노와 좌절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사회 현실에 서 있다. 지금의 이 사회,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이루고자 하던 그 민주사회가 맞나. 몇 해 전 우리는 민주의 촛불을 들고 무엇을 갈망하고 소원했는지 되짚어 봤으면 한다. 우리 모두 부끄러운 내로남불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정 양심적인 사람이길 바란다.

춘풍(春風)은 만물을 잉태시키는 어머니요, 가을 서리는 춘풍을 기다리기 위한 준비다. 다음 해에는 악취 나는 사회적 부조리와 이율배반의 행태가 일소되고, 노오란 색에 코끝 간지럽히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춘풍이 불었으면 한다. 그래도 이 화창한 봄날이 코로나를 비웃으며 우리에게 와서 따스한 바람으로 만물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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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 춘풍과 추상은 한 뜻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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