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은 소소함을 택하는 대범함이다

고전산책
미니멀리즘은 소소함을 택하는 대범함이다
  • 입력 : 2021. 10.15(금) 13:46
  • 영암일보
음식·의복·수레·거처는 하(下)로 하고, 덕행·언어·문학·정치는 상(上)으로 하라

飮食衣服輿馬居處 下比
음식의복여마거처 하비
德行言語文學政事 上比
덕행언어문학정사 상비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청성잡기(靑城雜記)』2권
「질언(質言)」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엮은 『청성잡기』에는 우리가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질언(質言)」에 실린 1~3행의 짧은 격언들은 건강하고 견고한 삶에 대한 매우 실용적인 지침이 되어준다.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선명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우리고전에서 찾은 이러한 삶의 철학과 지침은 오늘날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일맥상통한다.
성대중은 음식·의복·수레·거처는 하급(下級)으로 하고, 덕행·언어·문학·정치는 상급(上級)으로 하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거꾸로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차, 집에 대해서는 어떡하든 상급으로 하고 싶어 하지만, 어질고 너그러운 행동, 선하고 고운 말, 아름다운 문학, 바른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상위(上位) 1%’라고 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솔직히 적어보자. 맛있는 음식과 비싼 옷과 큰 차와 큰 집…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있나 점검해보자. 미니멀리즘은 이보단 좀 더 멋진 소원을 갖는 것이고, 이보단 좀 더 근원적인 소망을 품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좀 찌질해 보여도 꿋꿋이 검소하게 사는 담대함이고, 좀 쪼잔해 보여도 결단코 소박하게 사는 대범함이다. 세상에 낮고 약하고 작은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높고 강하고 큰 것은 거의 예외 없이 타락한다. 미니멀리즘은 작은 것, 여린 것, 상처받기 쉬운 것, 약하고 소소한 것을 눈여겨보는 섬세함이며, 동시에 큰 것, 강력한 것, 폼 나는 것, 대단한 것에 한눈팔지 않는 용감함이다.
나는 우리고전을 읽으면서 ‘미니멀리즘’은 멀리서 날아온 낯선 말이 아니라, 원래 우리 안에 내포되어 있던 소중한 가치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옛사람은 원래 미니멀한 삶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옛사람이 남긴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삶의 원형에 대한 처절한 질문과 철저한 자기 관리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묻고, 그렇게 찾은 해답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구현하고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고 지켰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미니멀리즘’이 있었다. 내 삶의 품격을 ‘상(上)’으로 이끌어줄 성대중의 격언을 다시 한 번 가슴에 품고, 오늘 하루를 연다.
출처 : 고전번역원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