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일은 시비를 최하로 여긴다

고전산책
천하의 일은 시비를 최하로 여긴다
  • 입력 : 2021. 12.02(목) 15:49
  • 영암일보
성호사설, 성호기념관 소장



나는 이 때문에 천하의 일은 시대의 형세가 최상이며,
행불행은 그 다음이고 시비는 최하라고 말한다.

余故曰, 天下之事, 所值之勢為上, 幸不幸次之, 是非為下.
여고왈, 천하지사, 소치지세위상, 행불행차지, 시비위하.

- 이익(李瀷,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권20 「사료의 성패를 읽다[讀史料成敗]」




“천하의 일은 시대의 형세가 최상, 행ㆍ불행(幸不幸)은 그 다음 시비(是非)는 최하”라는 언명은 성호 이익의 역사관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곧 성호는 당대의 형세를 중시하는 역사관을 지녔다는 지적이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을 경우, 성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에 대해서 가장 그 영향력을 낮게 보고, 그 다음으로 행불행을 살피며, 당대 형세를 가장 앞세운 것이 된다. 성호가 역사 인식에서 시비선악의 문제를 간과하고 오직 형세의 어떠함으로 역사를 평가하려 했다는 이해가 되는데 이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우선 성호의 발언 문맥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성호는 “천하의 일이 대개 10분의 8~9쯤은 천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우연에 의한 역사의 전개라는 우연사관을 견지했다. 곧 역사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도덕, 내지 춘추정의를 실현하는 필연적 법칙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춘추대의와 춘추필법을 당연한 것처럼 수용하여 필연사관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당대 역사관을 고려할 때 매우 파격적이다.

그는 냉정하게 사서(史書)를 읽으며, 사서에는 고금을 막론하고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이 그 시기의 우연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선악과 현불초의 구별까지도 그 실상에 꼭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사서를 두루 읽고 방증(旁證)하여 이리저리 참작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곧 “한 서적만 믿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주희의 스승 정이천의 사례를 인용했다. 정이천은 역사서를 읽을 때면 반쯤 이르러 문득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생각하여 그 성패의 실상을 짐작한 다음 다시 읽었다고 한다. 또 사실이 잘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는 것이다.

성호는 역사서에 씌여진 내용에는 그 사실이 맞지 않는 곳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맞는 곳도 역시 모두 준신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역사서란 성패가 이미 결정된 이후에 지어진 승자의 기록이므로 그 성패에 따라 진실이 아닌 내용도 당연한 것처럼 꾸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善)에 대해서는 허물을 숨기고, 악(惡)에 대해서는 장점을 없애버리는 것이 많을 수 밖에 없으니 현불초에 대한 구분이나 선악에 대한 보복도 반드시 옳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더욱 그 진위는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성호는 “지어진 역사서에 읽으며 성패를 짐작하면 사실과 이치가 그대로 맞는 곳이 많지만 오늘날 목격한 것을 따라 헤아려보면 8~9할쯤은 합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사서의 내적 논리로 보면 그럴 듯 하지만 제삼자의 비판적 안목으로 다시 보면 합치되는 않는 곳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역사에서의 시비선악은 최하로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득실의 문제에서는 다소 양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비의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 적어도 한 시대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그렇다.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에 있어서 누구보다 정면을 응시했을 성호가 지난 사료를 읽으며 시비를 가장 나중에 살펴보아야 할 대목으로 미룬 것이다.

수많은 문헌들이 생산되는 것을 목도한다. 언젠가 이들 중 일부는 역사가 될 것이다. 사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정론직필’의 문장을 읽을 때면 성호가 역사에서 시비를 가장 나중의 문제, 최하로 여긴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 : 함양대 |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부교수
출처 : 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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