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고향 선배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사회
[편집국에서] 고향 선배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유우현 편집국장
  • 입력 : 2022. 01.13(목) 13:01
  • 유우현 기자
이한열 열사 모친 고(故) 배은심 여사
오래된 집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할머니집에 가자. 라고 하면 떠올릴, 그런 수수한 8,90년대의 주택. 거기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다. 그가 집 앞 화단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어머니 왜 안 들어가셔요. 하고 물으니 그냥 좀 걷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나오면 한 부 받아볼 수 있을까?” 나는 가져다드리겠다고 말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향년 82세. 배은심 여사는 사랑하는 아들 곁으로 떠났다.

작년 5월 즈음. 고향의 전 회사에서 근무했을 때다. 나는 ‘지역 소식지’ 제작을 담당했었다. 지역 출신 어머니들의 인터뷰를 기획했지만 마땅한 인사가 없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의미 있는 이름이 나왔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였다. 열사가 나와 동향 출신이었다.

나는 제법 흥분했다. 열사의 어머니라니. 그야말로 민주화 시대의 어머니 아닌가. 그 자신도 아들을 따라 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져왔다.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민주화 어쩌고 하는 단어가 잔뜩 적힌 질문지를 들고 나는 그를 찾았다.

그는 별다른 특색 없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민주화 시대의 거룩한 흔적도, 투쟁 현장의 강인한 모습과도 거리가 멀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게다. 배은심 여사는 그런 무던한 할머니같은 인상이었다.

아담한 마당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내가 민주화 투사라고?” 이어지는 말은 예상을 빗나간다. “그건 언론이 원한 것이지. 나는 그저 사람들이 우리 아들 잊는 것이 싫어서, 우리 한열이 조금이라도 기억해달라고 나섰던 거야”. 민주화 들먹이는 지루한 질문들, 쓰이지도 못했다. 그가 덧붙인다. “요즘은 그 시절에 대해 폄하하는 얘기들이 있어.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도로 말하는 거야. 나는 그것이 좋지 않아” 잠시 생각을 고른다. “괜히 우리 아들에 대해서도 안 좋게 말하는 것 같아서...”

그에게서 느껴지던 감정이 있다.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도 정치적 의지도 아니다. 몇십 년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그것은 얼핏 눌러지고 또 주름으로 가려지어 혹 이젠 무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너무도 강렬하고 또 사무쳐서 나는 몇 달이 지나도 그 마음을 쉬 잊기 어려웠다. 그 죽음을 역사가 얼른 놔주지 않던 탓일까. 덤덤한 모습에도 사무친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났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그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나는 그를 길게 보지 못했다. 깊게 알지 못한다. 많이 겪지도 못했다. 그저 잠깐, 한 시간여 정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여도 어쩐지 가슴이 아픈 것은, 그에게서 내 어머니와,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모습이 비췄기 때문이리라. 선생님, 소식지가 나왔습니다. 하고 연락을 드리지 못했던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어머니’가 영면했다며 온 나라가 추모한다. 그러니 나 하나는 고향 선배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도 괜찮을 것이다.

온 마음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우현 기자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