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다움

칼럼
나의 나다움
김종수 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 입력 : 2022. 03.11(금) 10:09
  • 영암일보
김종수
목포산돌교회 목사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 나아가니라.
(사무엘상 17:38~40)


사무엘장 17장에 나타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흔히 약자와 강자의 싸움에서 약자의 승리를 말할 때 인용한다. 어떻게 약자인 다윗이 강자인 골리앗과 싸워 이겼을까?

본문 사무엘상 17장 38절을 보면 다윗이 적장인 거인 골리앗과 싸우고자 할 때 당시 이스라엘 왕인 사울이 다윗을 가상히 여겨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왕의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 주었다. 군복과 놋 투구, 갑옷, 칼이 모두 왕의 것이니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겠는가? 입은 것만으로도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입고 몇 발자국을 걸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움직이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멋있기는 하지만 제 몸에 맞는 익숙한 복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윗이 사무엘상 17장 39절에서 사울 왕에게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군복과 놋 투구, 그리고 갑옷을 벗어 버렸다.

어떤 사람이 길가의 들꽃을 보고 빈정대며 말했다.

“들꽃이여, 너와 네 모든 친구들은 피어나기가 바쁘게 곧 시들어버린다. 네가 아무리 아름답게 꽃을 피워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며 때로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자 들꽃이 대답했다.

“당신이야말로 바보다. 당신은 내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꽃을 피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꽃을 피울 뿐 사람들을 위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나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나의 환희와 기쁨은 나의 존재와 개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 들꽃의 말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인간의 불행은, 내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이기 때문에 시작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남의 가치관에 자신을 억지로 꿰맞춘다. 제 삶은 없다. 사회적 통념이 가져다주는 가치관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개성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집단으로 생산하지 않으셨다. 손수 하나하나를 빚으시고 무엇보다 당신의 신성한 형상으로 각자를 만드셨다. 잡초 하나에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의미가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나 자신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신앙은 나다운 나를 만드는 것이다.

요새 중·고등학생들의 자살이 늘어가고 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성적과 입시다. 입시가 삶과 죽음의 커트라인을 결정한다. 입시가 삶의 전부가 되고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류 대학이 일류 인생을 만들고 삼류대학은 삼류인생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모두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남의 기준이다.

나의 개성과 재능, 성격과는 관계없이 남이 만든 가치 기준에 따라 살려고 할 때 어느새 ‘나’는 사라진다. 이것이 이른바 자아 상실이다. 결국 나 아닌 남의 기준에 의해 평가 미달의 판정을 내리고, 절망하고, 자기를 비하하고, 때론 자살을 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불행은 여기에 있다.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아주는 삶을 살려고 하는데 불행은 있다. 나를 나로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기준으로 평가받으려고 한다. 여기에 나다운 나는 점점 사라진다. 나다운 나를 추구하지 않고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일지라도 남들이 바라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나다운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은 아닐까? 남이 만든 가치 기준에 내 삶을 억지로 맞추어 사느라 허둥대다가 내 인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키에 비해 침대가 작다고 침대를 늘리지 않고 내 다리를 자르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부와 명예는 내 기준이 아니다.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과연 그것들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