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와 청와대 이야기

칼럼
풍수지리와 청와대 이야기
김오준의 ‘심심풀이 한국사’
  • 입력 : 2022. 03.30(수) 17:12
  • 영암일보
풍수(風水)는 땅과 공간의 해석과 활용에 대한 동아시아의 고유 사상이다.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조경과 건축, 묏자리 등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사상이다.

‘풍수’란 용어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생명을 불어 넣는 땅의 기운을 살피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우리나라는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해 중국에서 전래되어 처음으로 풍수가 수도의 위치를 잡는데 풍수설이 제기되었고 신라 말엽 우리 영암 출신인 도선국사가 '도선비기'를 주창해 고려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친 비보풍수론의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 사상으로 자리 잡은 후 문벌이 형성되고 길지인 명당을 차지하려는 산송 문제가 대두되면서 더욱 풍수에 목숨을 걸었던 사대부들이 늘어났었다. 그들은 '주유야 풍'이라는 속설처럼 낮에는 주자학을 밤에는 풍수를 신봉했다.

명군 세종도 최양선이란 풍수 지관을 대궐에 6년 동안 머물게 하였고 숙종과 흥선군 이하응도 풍수를 끼고돌았던 야사가 전해진다.

본시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람과 물로 생명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자연이 땅의 모든 기운을 다스리고 인체의 구성 성분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땅의 성분과 거의 일치한다는 통계도 있다.

따라서 산자나 죽은 자나 따뜻하고 경치 좋은 배산임수의 길지에서 수를 누리고 조상을 모시려는 욕망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나 그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대한 풍수지리에 대한 구구한 설들은 매우 근거가 희박하고 억측이 심하다.

청와대가 경복궁과 근접한 위치인데 조선의 이성계가 수도를 정함에 있어 조선 8도의 길지를 물색 후 숙고 끝에 정한 터전이다.

칠궁의 저주니, 무수리의 공동묘지 터니, 북악산의 음기로 인한, 민비의 비운에 조선 총독들과 역대 대통령들의 불운을 불러온 흉지라는 등 터무니없는 설들이 난무하나 일부 풍수지리가 들이 혹세무민으로 한몫 챙기려는 야심으로 밖에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요즘 온 국민들의 화제가 되고 있는 청와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자.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관저를 말한다. 청와대란 명칭은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덮어있는 데서 유래했다. 청와대의 역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려가 개국하고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남경을 중시했다. 이후 숙종 때인 1104년에 평양에 서경과 함께 ‘이궁(離宮)’의 건립에서부터 시작됐다.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라고 이름 짓고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청와대로 개명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 접견실. 회의실 등이 있는 본관. 영빈관, 대통령관저. 수궁 터. 상춘재. 녹지원. 대통령비서실. 춘추관. 무궁화동산, 효자 칠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위치한다. 조종산인 삼각산의 갈래인 주산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 접견실. 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 비서실 및 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을 갖추고 있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무 대는 조선시대 수경사인 어영대의 군사훈련장으로 과거장, 또는 임금이 농사의 시범을 보인 친경(親耕)의 장소였다.

융무당과 경농재 등 관리 시설이 있었으나, 1927년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헐리고, 일본 놈들이 조선 총독의 관저를 건립했다.

이곳에 제7·8·9대 조선 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 주둔군 사령관 미국의 하지 중장이 거주하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경무대라는 대통령관저 명으로 이승만은 6·25전쟁의 부산 피난 시절을 제외하고 1960년 4월까지 초대·2대·3대 대통령으로 보낸 1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혁명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으로 숙소를 옮겼다.

경무 대라는 명칭이 부정선거 등 독재의 대명사로 부정적 인식이 되어 1960년 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들어가면서 지금의 청와대란 명칭을 사용했다.

그 뒤 1963∼1979년(5∼9대) 박정희 대통령. 1979∼1980년(10대) 최규하 대통령. 1980∼1988년(11∼12대) 전두환 대통령. 1988∼1993년(13대) 노태우 대통령
1993∼1998년(제14대) 김영삼 대통령. 1998∼2003년(제15대) 김대중 대통령. 2003∼2008년(제16대) 노무현 대통령. 2008∼2013년(제17대) 이명박 대통령. 2013~2017년(제18대) 박근혜 대통령. 2017년(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입주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의 주요 경내 시설은, 영빈관은 나라의 중요한 회의와 외국 국빈과 사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주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 12월에 준공이 되었다.

이곳 영빈관은 말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며, 외국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과 연회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실과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며 1991년 신축되었다. 이 본관 건물 신축으로 외국의 국가 원수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을 통해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 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통령 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 환영 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 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조선 시대 경복궁 북쪽 신무문 밖에 있었던 수궁(守宮)터인 지금 청와대가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로 알려져 고려 시대에 서경인 평양과 함께 남경의 이 궁이 있었던 자리다.

1394년 조선시대 경복궁이 심덕부와 김사행에 의해 창건되면서 이곳은 경복궁 북문밖 후원 되었으며, 그 뒤 1868년(고종 5)에 경복궁이 흥선군 이하응에 의해 중건된 후에도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그 이름의 연유처럼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던곳이다.

또한 이곳은 농사가·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 미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남산 부근에 있던 일본공사관을 총독이 사용하다가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총독 관사를 새로 지어 7·8·9대 조선 총독이 사용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 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 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상 용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다는 설도 있다.

높은 곳에서 보면 총독 관사 건물은 大(대) 자의 모양을, 총독부 청사 건물은 日(일) 자의 모양을, 서울시청 건물은 本(본) 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세 글자를 이으면 대일본이 된다는 것이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이곳은 미 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 청와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되었는데,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과감히 철거했다.

상춘재(常春齋)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녹지원(綠地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를 하는 곳이다. 춘추관(春秋館)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 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이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오준 논설주간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논설주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