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칼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 입력 : 2022. 05.18(수) 14:40
  • 영암일보
김종수
목사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세기 3:6)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만약 물가에서 악어가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될 수 있는 한 그 사람을 죽이고, 그런 뒤에 죽은 사람을 위해 울면서 그를 먹어치웠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는 고대 문헌에서 인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악어의 눈물’은 위선적인 거짓 눈물을 말한다.

‘악어의 눈물’은 우리의 옛 전래 동화인 ‘흥부와 놀부’에서 흥부가 부자가 되자 놀부가 이를 시기하여 제비 다리를 강제로 부러뜨리고 슬피 울며 치료하는 것과 유사하다. 놀부의 눈물 속에 일확천금의 욕망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 위장된 인간의 욕망이다.

지혜로 위장된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다.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언뜻 보면 매우 좋은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선과 악을 알아 선한 일은 행하고 악한 일은 행하지 않는 그 정도의 괜찮은 인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과 악을 알므로 인간은 오히려 선으로 위장된 악을 자행한다. 이것이 인간의 지헤로 위장된 욕망이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말이 바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탐욕이 지혜로 포장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파괴와 타락에는 항상 정당성이 있다. 그 파괴와 타락이 클수록 그 정당성은 더욱 커진다. 지혜로 인해 첨단 과학을 누리는 오늘의 우리가 바로 화려하고 웅장한 물질문명으로 위장된 야만인이다. 과학이나 경제를 보면 문화인인데 정신을 들여다보면 그런 무지몽매한 미개인이 없다.

인간의 파괴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을 위해서 전쟁을 하는 나라는 엇ㅂ다. 언제나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으로 위장되어 있다.

한 백인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식인종들에게 선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식인종들에게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얼마나 야만스런 짓인가를 깨우치게 하려는 소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유대인들이 수백만 명씩 학살당하는 등 갖가지 전쟁 소식이 이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개종한 식인종 노인이 선교사에게 찾아와서 물었다.

“선교사님, 우리들은 배가 고플 때나 사람을 잡아먹고, 그것도 먹을 만큼만 잡는데, 문명인이라는 백인들은 어찌 배도 고프지 않은데, 그것도 수백만 명씩 잡는 것이지요?”

어떠한 전쟁에 있어서나 그 목적은 평화라고 말한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도 ‘세계의 평화’ 아니 적어도 ‘자국의 보호’라는 기막히게 평화스런 지혜의 탈법을 사용한다.

무엇이 인간을 타라시키는가? 선으로 위장된 악마적 욕망이다. 우리의 신앙도 예외는 아니다.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인간 타락의 이야기는 바로 신앙인이라는 우리가 신앙으로 위장된 악마적 욕망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