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말단부터 당대표까지…이정현, 이젠 ‘도지사’다

정치/자치행정
최말단부터 당대표까지…이정현, 이젠 ‘도지사’다
대한민국 정치사 통틀어 가장 휘귀한 경력
말단 당직자부터 당대표까지…성실함이 만든 기적
무소속 생활 접고 도지사 '정조준'
  • 입력 : 2022. 05.24(화) 10:47
  • 영암일보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 이정현 후보의 자전거 유세

제8회 지방선거 경쟁이 한창이다. 특히 전남도지사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도전하는 김영록 지사와, 한국 정치사에 있어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정현 후보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 입지전적 정치인
이정현 후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 정치사를 통틀어서 가장 희귀한 경력의 정치인이다. 말단 당직자에서 시작해 당 대표까지 올랐고, 보수 정당 후보로 꾸준히 호남에서 출마했다.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여섯 번째 호남 출마다. 지금까지 전적은 2승 3패다. 체감 승률은 훨씬 높다. 보수 정당의 정치인이 호남에서 이룬 ‘재선’이기 때문이다. 진영을 막론하고 한국 정치사에 남긴 큰 업적이라는 평이다.

물론 모든 순간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박근혜와 뗄 수 없는 정치 행보가 그에겐 영원한 '그림자'다.

▶최말단 간사부터 당때표까지…기적 중의 기적
이정현 후보는 민주정의당의 최말단 간사로 당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민정당은 영남 중심 정당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수모도 겪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부지런함이 당대표 박근혜의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 주말도 평일과 똑같이 일하는 습관을 무려 15년간 유지했다. 그것을 양분삼아 여당 대표까지 올랐다. 인턴사원이 대표이사가 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선거 이력도 극적이다. 첫 도전은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다. 민자당 이름으로 광주시의원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낙선이다. 2004년에는 총선에 출마하며 광주의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결과는 득표율 1.03%에 그쳤다. 당시 시민들이 이 후보의 명함을 받자마자 면전에서 찢어버리는 일도 흔했다. 이 후보는 4년 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다.

이후, 고향 곡성이 그에게 제대로 기회를 줬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순천·곡성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는 49.43%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타이틀도 영향을 줬지만,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마을회관에서 숙식도 마다치 않던 열정이 당선을 만들었다. 2년 뒤 제20대 총선에선, 고향 곡성이 분구가 돼 빠진 순천에서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박근혜 연관성은 아킬레스건, 정권교체는 호재
이정현 후보의 정치인생은 박근혜와 밀접하다. 당대표 박근혜는 당직자 이정현의 부지런함과 언변을 눈여겨 보고 그를 중용해 ‘박근혜의 복심’으로 키웠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연이어 맡으며 정권의 핵심으로 올라섰다.

이는 정치인 이정현에게 하나의 족쇄가 됐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본인의 위기로도 작용했다. 당대표 시절 맞게 된 국정농단은 그가 30년 넘게 몸담은 새누리당을 떠나야 하게 만든 계기였다.

무소속 생활만 꼬박 5년, 이정현 후보는 올해 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으로 돌아왔다. 전남도지사 선거를 위해서다. 때마침 일궈낸 정권교체도 그에게 분명 호재다.

이정현 후보는 이번 선거에 대해 "지방 선거가 도입 된 이래 선거 다음 날 전남에 온 국민의 눈이 집중 되게 하는 경천동지할 일이 무엇이겠느냐"며 "그것은 전남 유권자들의 선거 혁명"이라고 말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