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이 필요한 순간

고전산책
한 잔 술이 필요한 순간
  • 입력 : 2023. 02.02(목) 10:37
  • 영암일보
이 시의 제목은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로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원조이다. 백거이는 술이 꼭 필요한 인생의 일곱 가지 순간을 포착하여 7수의 시를 지었는데, “술 생각 잊기 어려운 순간이 언제인가[何處難忘酒]”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때 술 한 잔이 없다면[此時無一盞]~”으로 맺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시대 문인들이 더러 이 시의 제목과 체제를 본떠 시를 지었다. 그중에서 이행의 시를 소개해 본다. ‘용재(容齋)’라는 호로 잘 알려진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시 대가로 손꼽히는 분이다. 소개한 시는 거제도 유배 살이 때 지은 시를 모은 「해도록(海島錄)」에 실려 있다.

이행은 어째서 유배를 떠났던가. 1495년(연산군1)에 과거 합격하여 관로에 들어선 후, 1504년에는 사간원 헌납을 거쳐 홍문관 응교가 된다. 이 해 논란이 된 사건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왕후로 추숭하자는 논의이다. 윤씨는 성종 때 여러 사건으로 인해 폐서인(廢庶人)되었는데, 연산군은 등극 후 왕후로 추숭하려고 했고 모친의 원통함과 관련된 이들을 탄압했다. 이른바 갑자사화(甲子士禍)라는 사건이다. 당시 이행은 왕에게 간언하는 홍문관 관원으로서 윤씨의 추숭에 반대하다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유배에 오르게 된다.

그 유배길은 어떠했던가. 갑자년(1504년) 4월 장형(杖刑)을 맞고 충주로 유배되었고, 그해 6월 벗인 박은(朴誾)이 참수를 당하자 박은과 친하다는 이유로 또 장형을 받고 노역에 충원되었다. 9월에는 거의 죽을 때까지 모진 고문을 받았고, 12월에는 다행히 사형을 면하였지만, 또 장형을 맞고 함안군의 관노로 배속되었다.

1505년 가을에는 익명서(匿名書)로 인해 또 옥사가 일어나 고문을 받으며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인 1506년 거제도로 이배(移配), 그해 2월에 거제에 도착해 위리안치되었다. 거제에 도달했을 때가 그의 나이 29세였다. 젊은 나이지만 누차 장을 맞고 고문을 당하며 배소를 옮겨 다녔으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엘리트가 거친다는 홍문관 관원에서 한순간 죄인으로 전락하여 남쪽 끝으로 쫓겨난 처지, 장형과 고문을 또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의 막연함. 이 모든 것이 그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어느 날 비바람과 함께 절망과 좌절이 엄습하자 그는 한 잔 술로 이를 이겨내려 하였다.

그에게 음주란 곧 절망적 상황에서 삶을 부지하려는 생의 노력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의 ‘何處難忘酒’를 “도저히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순간”이라 번역해도 무방하리라.

이후에 이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해 가을 서울로 압송하여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치라는 명이 내려와 상경하는 도중 기적적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사면되었다. 이후 다시 조정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내며 우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1531년(중종27)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다가 그의 일당에게 도리어 탄핵을 받아 1532년 평안도 함종으로 유배 갔다가 2년 뒤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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