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나의 보호색 - 완적

칼럼
술은 나의 보호색 - 완적
재미있는 철학이야기
  • 입력 : 2024. 03.14(목) 10:46
  • 영암일보
<사진=강성률 철학박사>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완적은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사마씨 집안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마소가 자신의 아들 사마염(진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었으나, 말년에는 쾌락에 빠짐)을 완적의 딸에게 혼인시키고자 하였다.
이 제안을 받은 완적은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그 앞을 물러나, 무려 60여 일 동안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만 마셨다.
결국 혼사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서 술은 일종의 보호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술은 결코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고통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는 가끔 말을 타고 길 끝나는 곳까지 달려가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하니, 그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완적의 집안은 당시 유명한 문장가의 가문이었고, 완적 스스로는 당당한 체구와 큰 키, 훤칠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몇 달씩 두문불출하며 책을 읽었고, 특히 자연을 좋아하여 산에 올라가서는 멀리 푸른 호수와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지는 계절의 풍광을 바라보느라 집에 돌아갈 줄을 몰랐다고 한다.

또 어떤 때는 자기 집 뒤뜰의 죽림(竹林) 속에서 거문고를 타고 노느라 잠자고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바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완적처럼 대나무 숲에서 놀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며, 노장(老莊)의 허무사상을 숭상하고 유교의 예절을 멀리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하는데,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완적과 혜강이다.

완적의 뛰어난 재능을 전해 들은 당시의 권력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그를 정치에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고, 완적은 이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병을 빙자하였고 때로는 술에 의지하곤 했다.

아마 그는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통치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시 사마소의 가혹한 통치 행태를 풍자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완적은 틀에 박힌 형식과 예절을 싫어하였다.
그리하여 예법에 얽매인 지식인이 찾아오면 흰자위를 드러낸 눈으로 대하고, 거문고나 술을 들고 오는 손님에게는 호의 어린 눈길로 대하였다.

그의 이런 태도에서 오늘날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 냉정히 대한다.’는 뜻의 백안시(白眼視)라는 말과 그 정반대의 의미인 청안시(靑眼視)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완적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그가 바둑을 두던 중 그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완적은 그대로 바둑을 계속하였다.
잠시 후, 그는 술을 잔뜩 들이키고는 큰소리로 울면서 붉은 피를 토해냈다고 한다.

또 거상(居喪) 중에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당시의 규범이었으나 완적은 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완적(阮籍, 210년-263년)은 유가의 관점에서 보면 방약무뢰한 인물이 분명하지만, 실제로는 성실하고 순박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통치자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하면 한 나라의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그는 세상의 예법과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사상에 충실하여 한평생을 살아갔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당시 고루한 중국의 전통 사회에 많은 파문을 던졌거니와, 오늘날 위선과 가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자체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겠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