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맞수 이순신과 원균 이야기

기고
조선 최고의 맞수 이순신과 원균 이야기
  • 입력 : 2021. 09.02(목) 14:17
  • 영암일보
월봉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 광주문인협회 이사

500년 조선 역사에서 최고 맞수는 이순신 장군과 원균을 꼽는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 좌수사로, 원균은 1592년 1월에 경상 우수사로 부임했고, 이순신보다 원균의 나이가 다섯 살 더 많고 무과는 7년이나 더 빨랐으며 원균은 갑과 합격인 데 비해 순신은 병과 합격으로 출발점부터 달랐으며 순신은 문과에서 무과로 전과했지만, 원균은 조상 대대로 무인 출신에 당색도 차이가 컸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박홍이 이끄는 경상좌수영군이 일본군과의 교전도 없이 도주하자 원균의 경상우수영 장병들도 크게 동요되어 흩어졌다. 많은 곡절 끝에 전라좌수영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해 남해 일대에서 20여 일 동안 활동하며 적선 10여 척을 격파하고 겨우 되살아났다. 그 후 1592년 5월 7일 합동하여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에 대한 공으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는 자헌대부를, 원균에게는 1 품계 아래인 가선대부를 내리면서부터 둘 사이에 불화가 시작되었으며, 1593년 8월 신설된 삼도수군통제사에 이순신이 임명되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둘은 틈만 있으면 서로를 비방했고 죽을 때까지 상대를 원망했다.

원균은 1597년 7월 칠천량에서 삼도수군을 이끌고 싸웠으나 대패해, 전라우도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와 함께 전사했고, 순신은 1년 후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원균의 아들과 친동생도 전사했고 순신도 아들과 조카까지 나라에 바쳤다.

1604년 논공행상 때 이순신은 권율 등과 함께 선무공신 1등으로 책정되고 순신은 충무공에 권율은 충장공을 받았으나 원균은 원릉군으로 추봉되었을 뿐 시호도 받지 못했다.

‘경상장졸 개오합지병야 일일일참즉 군령보전’(慶尙將卒 皆烏合之兵也 日日一斬卽 軍令保全)

‘경상도 군졸은 모조리 오합지졸이라 군율을 어긴 자들의 목을 하루에 한 사람 쳐야 군율이 보전된다’

‘경상도인들은 무리를 지어 머리를 깎고 왜옷을 입고 왜적의 앞장에 서서 충청전라지방에 침입하여 죽이고 뺏고 불 지르고 강간함이 왜적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 심지어는 노인 어린이 부녀자의 머리를 베어 왜의 장수에게 진상하기도 한다.’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경상 우수사 서인 원균과는 당색이 다른 동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몹시 원균을 싫어했다. 1592년 9월 부산포해전에서 장군의 오른팔 같았던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전사하자 그의 죽음에 원균의 장수로서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그 정도는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원균에 관한 내용을 나열해 본다.

칠천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1597년 5월 8일 자 일기다.

‘원균이 수하 아전을 육지로 심부름을 보내놓고는 그의 아내와 사통하려 하였다. 아전의 아내는 원균이 기를 써도 따라주지 않고 밖으로 뛰쳐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이런 자가 온갖 꾀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또한 나의 운수로다. 원균이 나를 헐뜯기 위해 쓴 글은 너무 많아 말에 얹혀 조정으로 보내질 정도로, 그 짐이 서울 길에 잇닿았을 지경이다. 그렇게 나를 헐뜯는 짓이 날이 갈수록 심하니, 그저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라며 원균에 대한 원망으로 일기는 가득 찼다.

​이 밖에도 1593년 2월 28일, 원균이 어부들의 목을 찾고 있으니 황당하다.

3월 2일,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더욱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5월 14일, 원균이 함부로 말하고 사람을 속이니 모두가 분개하였다.

5월 21일, 원균이 거짓 공문으로 군사들을 속이니 정말 흉측하다.

5월 24일, 중국 화전을 원균이 혼자 쓰려 꾀를 내니 우습다.

5월 30일, 위급한 때에 원균이 계집을 배에 태우고 논다.

6월 10일, 원균이 흉계와 시기 가득한 편지를 보내왔다.

6월 11일, 원균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한다.

7월 21일, 원균이 흉측한 흉계를 냈다.

8월 2일, 원균이 나를 헐뜯어 망령된 말로 떠드니 어찌 관계하랴!

8월 6일, 원균은 걸핏하면 모순된 말을 하니 우습고도 우스울 따름이다.

8월 7일, 원균은 항상 헛소문 내기를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월 19일, 원균은 음흉하고 그럴듯하게 남을 속인다.

8월 26일, 원균이 음흉하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해 해괴하였다.

8월 28일, 원균이 와서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었다.

8월 30일, 원균은 참으로 흉스럽다고 할 만하다.

9월 6일, 하루 종일 원균의 흉측스러운 일을 들었다.

​1594년 1월 11일, 원균이 취해서 미친 말을 많이 했다. 우습다.

1월 19일, 원균이 남들이 마음에 두었던 여자들 모두와 관계했다.

2월 18일, 원균이 심하게 취해서 활을 한두 번밖에 쏘지 못하였다.

3월 3일, 원균의 수군들이 우스운 일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3월 5일, 장수들이 이야기하던 중, 원균이 오자 가버렸다.

3월 13일, 원균이 거짓으로 왜군 노릇 했던 자의 목을 잘라 바쳤다.

4월 12일, 원균이 미친 듯 날뛰니 모두가 무척 괴이쩍어했다.

1595년 2월 20일, 원균의 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들었다.

2월 27일, 원균이 너무나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이처럼 이순신은 원균을 42회가량 좋지 않게 기록했다. 연도별로 보면 1593년에 17회, 1594년에 11회, 1597년에 12회로 집중돼 있다. 1592년, 1595년, 1596년에 원균에 대해 적은 기록은 거의 없다. ​1595~1596년은 원균이 충청병사로 옮겨가 수군이 아니었다. 1597년에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원균의 모함과 왜군의 모략으로 오히려 이순신이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의 두 라이벌이었다. 마치 현 정국의 여당과 여당의 모습과 흡사하다.

(좌)이순신, (우)원균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