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지 못할 친일 매국노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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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지 못할 친일 매국노들 이야기
  • 입력 : 2021. 10.06(수) 12:33
  • 영암일보
김오준 시인
조선 마지막 서인 노론당 영수에 친일 매국노 이완용은 그의 조카 김명수가 쓴, '일당기사' 에서 "나를 매국노라 부르지 말라. 조선은 어차피 러시아나 일본의 식민지가 될수 밖에 없었다. 그 최선책이 일본과의 합방이었다."라고 그의 친일 행위를 정당화 시키면서 끝까지 변명을 했다.
한때는 독립협회 회장을 지냈고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영어에 능통하고 당대의 명필로 직지사 대웅전 현판이 그의 친필이다.
그의 손자가 대한사격 연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조부의 땅을 찾겠다고 수 십건의 반환소송이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란다.
친일의 역사를 한 번 되짚어보자.이완용.박제순.이지용.이근택 권중현의 '을사오적'에 이완용.이병무.이재곤.임선준.고영희.송병준.조중웅 '정미 칠적'과 이완용.윤덕영.민병석.고영희.박제순.조중웅.이병무.조민희 '경술 8적', 도합 15명이 이른바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친일 매국노 들이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친가는 말할것도 없고 외가나 처가가 권력의 핵인, 전주이씨.안동김씨.여흥민씨. 풍산홍씨.반남박씨.은진송씨나 조대비의 풍양 조씨 집안에 온갖 혈연과 학연에 같은 서인파 당색으로 먹이사슬들이 얼키설켰다
특히 매국노 이완용은 살아 생전엔 약산 김원봉이 거느린 의열단의 '5가살 7척살' 계율속에 집이 불탔거나 목줄이 끊길까 두려워 평생 오금저렸다
죽은 뒤 모두들 조선 제 1의 명당이라고 수 만금을 드려 썼던 묘지들은 훼손되고 이장을 하기위해 파묘해보면 유골 한 점도 찾을 수 없었으며 후손들은 거의 미국이나 유럽에 망명커나 남몰래 귀국해 서울 강남에서 궁궐의 성벽처럼 담장을 높이 쌓고 외부와 일체 차단 한 채 졸부의 삶을 누리거나 신분을 짜집기해 정계나 학계에 진출해 가짜 보수로 둔갑해 식민사관에 동조하며 조상들의 친일 행위의 정당성을 부르짖으며 진보정권의 안티가 되여 보수 골통들의 태극기 부대에 합류해 할애비 재산반환소송이 그들의 중요한 일과단다.
문제는 친일에 가담했던 그들의 당시 나이가 거의 40대로 노망들거나 돈에 환장할 정도의 궁핍한 삶이 아니었고 왕족이었거나 과거에 입격한 먹물 진한 식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주구 노릇을 서슴치 않았고 친일세력 일진회의 이용구와 친일행위 경쟁을 했다는 사실에 더 경악을 금할수 없다.
이완용은 3관왕으로 일본 천황으로부터 받은 은사금이 당시 조선땅 통털어 현금 소유 1위에, 박제순 등 세 놈들은 2관왕까지 한 철면피였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을사늑약과 경술국치의 매국행위로 천황으로부터 은사금을 받은자 76명의 당파별 분포는 조선을 말아 먹은 송시열계의 서인 노론계열이 67명. 남인계열 5명.북인계열 2명으로 서인 67명중 이성계의 전주이씨가 무려 13명으로 할아버지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그의 후손들이 황금에 눈이 멀어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선 그 작태를 용서할수 없다.
그중 이지용은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 이최응의 아들로 그 애비 이최응은 임오군란 때 구식군인들에게 쫓겨 담장을 넘다 음낭이 깨진 채 살해 당했고 훗날 이지용은 경성기생 '산홍'에게 집적거리다.'나는 비록 몸을 파는 기생이지만. 당신같은 매국노에게는 몸을 절대로 팔지 않는다' 하여 산홍에게 망신당한 일화도 있다.
더욱 신통한 사실은 60년 세도정치의 본산인 안동김씨들은 비록 세도를 부리고 권력과 재물을 그토록 탐했으나 매국 행위자가 15명의 명단에 등단치 않은게 참으로 기특하고 가상하다


[저자약력]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