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형체, 역사는 혼(國猶形, 史猶魂)

기고
나라는 형체, 역사는 혼(國猶形, 史猶魂)
  • 입력 : 2021. 10.06(수) 12:41
  • 영암일보
김도상 작가
2년 전인‘2019년 9월,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일환으로 독립운동가 흔적 톺아보기 및 고구려 역사탐방을 위한 중국 길림성과 간도 지역 탐방에 나섰다. 탐방단의 구성은 독립운동가 후손 대학생, 지역문인 등 60명이었으며,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여정은 나에게서는 우리 민족 상고사의 실체에 대한 그간의 의구심 들을 지우고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매우 소중한 기회였으며, 함께했던 대학생 청년들로서는 조상들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현장체험과 그들의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정립시킬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 본다.

Ⅰ. 청(靑) 왕조와‘애신각라(愛新覺羅)’<심양(瀋陽)에서>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심양공항에 내리기까지는 2시간여 거리에 불과했다. 시가지로 들어서니 처음인 이곳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 듯도 했다. 이곳 심양은 후금의 누르하치가 1625년 북경으로 나아가 중국을 통일했던 전초기지였다.‘북릉공원’의 누르하치 동릉과 흉타이지 동상 앞에서 비문의 기록과 조선족 해설사를 통해 전설 같은 청 왕조와‘애신각라(愛新覺羅)’의 비사를 소상하게 듣게 되었다. 금(金)나라의‘아골타’가 국명을 금(金)이라 한 것도 청 태조의 성(性)을‘애신각라(愛新覺羅)’로 하였던 것도 지금까지의 통설은 황금을 중시하던 여진족이 금을‘에이신(Aisin)’, 숭상함을‘기오라(gioro))’라 해서, 그 합성어로‘에이신 기오로(Aisin-gioro)’라 부르고 한자를 차음하여‘애신각라(愛新覺羅)’로 불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민족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신라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마의태자 일행과 고려 왕건의 맏딸‘낙랑공주‘의 헌신으로 그 아들‘김 일’이 이곳 북방 땅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함보’가 성장하여 아버지의 소원대로‘복간수(지금의 하얼빈)’를 중심으로 여진족과 규합, 새 제국을 건설한 것이 금나라가 된 것이라 했다. 그들의 조상이 신라이기에‘애신각라(愛新覺羅 :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는 후일 청의 마지막 황제‘푸의’에까지 이르렀다 했다.‘기록만이 역사가 아니다!’,‘신화도 역사로 접근하여 실체를 찾아내면 곧 역사다’란 말이 생각 났다.‘애신각라’비사도 이미 중국 유력 25사인‘금사(金史)’에서 확인되었으며 ‘이상훈’소설‘金의 나라’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Ⅱ.‘국내성’역사와 ‘동북공정’의 충돌 <집안(集安) 에서>
집안(集安 : 지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하고 있는 옛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강 건너 북한의 산들을 보자니 이 역사의 현장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유리왕이 졸본( 忽本, 홀본) 에서 국내성 천도 후, 장수왕 평양 천도까지 400년 이상 옛 고구려의 중심이다. 광개토대왕비는 지금은 보호라는 빌미로 사방을 유리창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 옆에 오호묘가 있고 동쪽에 피라미드 형의 웅대한 장군총이 있었으며, 집안 외곽은 환도산성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환도산성 아래의 압록강 지류 옆에도 거대한 피라미드 군이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외형적 복원은 이른바 중국의‘동북공정’의 산물이다. 결국 동북공정은 유적복원이라는 미명아래 고구려의 원형을 심하게 훼손시켰으며, 더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켜 버렸다. 이런 현장에서 우리의 고구려 역사와 동북공정의 충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피부로 느꼈으며 그 상흔(傷痕)에 마음이 아팠다. 문득, 행촌‘이암’선생이‘단군세기’서문에 썼던 어록,‘국유형(國猶形 : 나라에는 모습이 있고), 사유혼(史猶魂 : 역사에는 얼이 깃들어 있다.)이란 말이 다시 한번 떠 올랐다. 즉,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곧 그 형체 속의 정신일진데 집안의 국내성은 형체는 있으나,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빼앗껴 버렸으니 역사의 혼(魂)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Ⅲ. 아! ‘배달환국’! <백두산에서>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백두산!, 민족의 영산, 배달환국의 신시(神市)가 있던 그 영산을 올랐다.‘장백폭포’를 지나, 다시‘흑풍구’능선을 타고 북파의 ‘천문봉’에 올랐다.‘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불러가고 있었다. 천지 건너 동파쪽‘장군봉’과‘청석봉’, 남파쪽‘용문봉’을 보며 저 건너가 북한 땅이란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원래의 우리 땅인 남파 쪽을 김일성이 중국에 할애하여 이제는 동파만이 우리 땅이라니 더욱 가슴 아팠다. 멀리 북동 쪽으로 두만강, 서쪽으로 송화강이 운무 속으로 뿌옇게 보이는 듯했다. 아! ~ 배달환국이여! 1대‘거발환 환웅(居發桓)부터 18대‘거불단(居不檀)환웅 까지 이어진 배달환국 1500년이 이 산에서 시작되었다. 문득, 1911년 상고사를 모아‘환단고기(桓檀古記)’를 쓴 계연수(桂延壽)를 생각해 본다. 그는 결국 이 산 아래서 독립운동을 하다 전사하였다. 아!~ 지금의 나는 민족역사의 시원인 이 산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다짐해야 하는가?!, ‘역사의 얼’이라도 담아가야 한다는 심정에 천문봉 화산재 조각인 흰 돌과 검은 돌 조각을 하나씩을 채집해 넣었다.‘흑풍구 휴게소’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오늘날 우리들은 민족의 역사를 몇 년이라 말하고 있는가?! 일본이 만들어낸 고조선을 출발로 역사가 3000년으로 축소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실존했던 우리 고대사 7000년은 신화 속에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인가?! ‘환단고기’나 ‘단군세기’에 나오는 우리의 환단역사, 마고시대로부터 츨발된 2000년의 민족 탄생기와 3500년 환국시대, 그리고 이어진 배달국 시대 1500년은 종적이 없이 지워진다. 그렇다면,‘사마천‘의‘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탁록전투’의 전승자 14대‘치우천왕(蚩尤天王)’이야기는 역사에 이름도 없는 영구미제사건으로 처리되고 마는 것인가?! 이 실존하는 역사의 가위질에 참으로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Ⅳ. 슬픈 청년 윤동주 <용정, 명동에서>
‘용정’은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다. 그래서 우리에겐‘선구자’라는 노래의 고향으로 기억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줄기‘혜란강’과‘용문교’는 그대로 이나,‘일송정’푸른 솔은 간곳이 없다. 원래는 산꼭대기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는데 일본군이 약물로 소나무를 죽게 하였고 그 아래 정자를 지어‘일송정’이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민족 혼(魂)의 말살인가?! ‘대성학교’는 이름을 바꾸어‘용정중학교’로 남아는 있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 노래 ‘선구자’를 부르면서 용정을 떠나,‘윤동주’의 고향‘명동촌(明東村)’으로 가는 길에 광활한 만주벌판을 보노라니, 문득 단재(丹齋)‘신채호’선생의 말씀이 긴 여정 내내 떠올랐다. 그는‘간도’의 참변을 보시며‘여기에 영혼이 있다면 이 처참함에 눈물을 뿌릴 것이다’고 하셨고,‘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고,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든다’고 했다. 단재 선생은‘조선상고사’를 통해 일제가 꾸민 한사군의 위치를 요동과 만주로 밝히면서 우리의 역사를 반도역사에서 대륙의 역사로 올바르게 환원시켜 내신 분이다. ‘명동촌(明東村)’‘윤동주’의 생가에서 ‘서시(序詩)’, ‘별을 헤는 밤’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저항시인이자 작가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집안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에서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일제에 항거하다 붙잡히게 된 그의 마지막은 잔인하고 악명높은‘마루타’로 희생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Ⅴ. 여정을 마치며 다져보는 각오 <연길에서>
역사학자‘헤로도토스’는‘역사란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라 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역사는 승자의 전리품처럼 승자를 미화시키는 허구로 첨삭되어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캐낼수록 허구가 들어 나게 되고, 오히려 신화로 침잠되었던 역사의 진실은 캐어낼수록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연길’에서 발차한 중국고속열차(高鐵 : 꺄오테)는 이 만주벌판을 휩쓸고 간 역사처럼 세차게 달려 다시 심양으로 향했다. 옛 부여 수도 이자 발해의 중심이었던‘장춘(長春)’을 지나면서 이곳이 한때 만주 수탈과 중국정벌을 위해 일본이 세운 만주국 수도‘신경(신징)’임을 알고 보니‘장춘’이란 지명이 무색했다. 이번 여정을 통하여 우리 역사 왜곡의‘3독(三毒)’이,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毒)이라던 그 말을 떠올려 보게되었다. 그중 가장 심한 독(毒)이 왜독 즉,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 했는데, 오늘날에는 동북공정이라는 새로운 중독마저 더하여 우리의 역사를 훼손하고 있는것이다. 우리의 상고사 이래 영토가 바뀌어진 이 만주벌판을 지나며, 7000년 우리 민족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로지 역사의 혼(魂)만은 지켜나가야 할 것임을 긴 여정에서 몇번이고 다짐해 보았다.



[저자약력]
계간「문장」신인 작가상수상( 2013수필가등단 )
한국문인협회 대구지부 수필분과 위원
(사)이상화 기념사업회 이사
대구市 공무원문학회장(제8대)역임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대구종합복지회관 금빛대학 인문학 강좌 교수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