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래채

기고
안녕 아래채
  • 입력 : 2021. 10.06(수) 12:49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시골의 우리 집은 터를 잘 잡은 지 어언 250년.
조상이 터를 잡은 후로 내가 8대째, 그동안 끊임없이 자란 아름드리 동백나무며 감나무 몇 그루도 이제 늙어 그들을 볼 때마다 늙음의 모양이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래채는 내가 어린시절 사랑방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일꾼이 살던 방이었다. 겨울에는 일꾼이 항상 볏짚으로 소쿠리를 짜든지 덕석을 짜곤 하던 모습이 기억의 한편에 남아있다. 오늘 아래채 한 켠에 숨어있는 옛날 밥그릇과 국그릇을 찾아 낸다. 직경이 무려 15센티 정도의 밥그릇, 국그릇은 20센티가 넘는다. 어린시절 사람들은 그 그릇에 밥을 밥그릇 높이만큼 소복하게 올려 밥을 먹곤 했다. 그 그릇들을 장독 속에 엎어 놓는다. 그리움이다.
소여물을 먹이던 돌구시도 찾아내고, 밭을 갈때 소의 목에 걸었던 멍에도 찾아낸다. 어렸을 적 내가 배터리를 가지고 고기를 잡던 삐삐선으로 연결된 대나무도 있다. 거기엔 아직도 굵은 철사가 꽂혀 있다.
형틀만 남은 가마니틀, 보온 못자리틀, 밑판에 녹이 슬어 부슬부슬 떨어지는 가스레인지, 지게 하나, 써레, 돌확, 별의별 옛날 것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나의 손
에 들려 나온다. 오늘 아침, 굴삭기를 불러 아래채를 허물어뜨렸다. 이미 비가 새고 벽이 여기저기 무너져 내려 어머니께서 점을 보러 갔더니 아래채 때문에 병 잘 날이 없다고 하여 허물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나이 먹으면 병이야 항상 따라 다니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 근심이라도 덜어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 마음먹은 일.굴삭기가 지붕을 콱 찍고 한번 쓸어 내리자, 집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가 온 집을 감싸고, 흙벽은 대나무 조각과 황토로 얽힌 것들이어서 굴삭기가 잡아 흔들면 대나무 조각들만 앙상하게 밖으로 불거지곤 했다.
슬레이트 지붕은 굴삭기의 삽날에 산산조각이 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볏짚들은 풀풀거리며 먼지와 함께 내려앉고오, 그런데 이 댓조각과 볏짚들을 보게. 내 어렸을 적 아래채는 초가집이었고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슬레이트가 얹어진지 어언 30년. 그런데도 이것들은 검게 부패된 곳 하나 없이 막 마른 것처럼 싱싱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서까래며 대들보, 기둥들도 하릴없이 내려앉는다. 그것들을 크기대로 가려 품을 낸 집안 아주머니와 함께 동백나무 아래에다 차근차근 쌓는다. 나무마다 난 홈들은 집을 지탱한 무게 만큼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 목수의 짙은 숨결과 정성이 홈 하나하나에 완벽하게 배어 있다. 반쪽난 문창살은 못 하나 없이 홈으로만 짜인, 거기다 문양까지 새긴 모습에 가슴을 찡하니 메워오는 아픔의 미도 함께 한다. 나의 실수다. 창살은 미리 떼어놓는 건데..항상 나중에 후회.
무슨 집이 이렇게 나무가 많으냐며 나무들 살살 골라내며 투정하던 굴삭기 기사도 쉽게 무너지는 것에는 신이 난 모양이다. 콘크리트 집도다야 그 더미의 부피와 무게가 훨씬 적을 테니까 말이지.
한 시간 만에 집은 폭삭 가라앉고, 기사가 집터를 깊게 파 그 잔존물들을 하나하나 묻어 나갈 때,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진한 아픔이 다시 오고 250년의 한 역사를 내 손으로 없앤다는 생각을 하지 눈물마저 그렁 솟구치는 것이었다.
사랑방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대대로 넘어가 보면 저 조선조 정조 때부터 잡아온 터가 아니던가.
파낸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굴삭기가 왔다갔다 몇 번하니 집터가 자그마한 활토마당으로 변해버린다.
내가 아주 어린시절, 손님이 오시면 부엌에서 아래채로 물그릇을 심부름했던 곳. 안방에다 담가두고 익어가는 술을 밀주단속반이 온다고 구석 어두운데에다 감추던 곳. 또 일꾼이 기거할 때는 멍석을 만들면서 해주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할머니 방에서 홍시를 훔쳐다 주곤 했던 곳.
일꾼도 가고 그 옆이 돼지우리로 변했을 때, 꿀꿀거리는 돼지가 신기해 물래 죽재를 마구 퍼주었던 기억.
이제 안녕, 아래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