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의 색깔

기고
군불의 색깔
  • 입력 : 2021. 10.14(목) 19:00
  • 영암일보
박석구 에세이스트 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시골에 내려와 감나무 가지치기를 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버렸다. 그동안 눈이 온다고 쉬고 비가 온다고 쉬고 광주에 모임이 있어 가서 며칠 남지 않는 지금은 느긋함은 사라지고 조급함만 마음에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시작하고, 그 작업에 이력이 날만큼 나서 진행속도도 빨라져 이제 3일 정도면 다 마무리가 될 성 싶다.
시골집은 옛날의 깊은 부엌을 메꾸어 입식 부엌이 된지도 10년이 넘었건만 내가 가끔 가서 거처하는 건넌방은 아직도 옛날식으로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는 방식 그대로여서 점심때 한번 저녁에 한번씩은 불을 때야만 한다. 지천으로 깔린게 감나무 토막이어서 불쏘시개는 걱정도 안했는데 어렵쇼? 10일 정도를 때고나니 그 토막들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이제 불쏘시개 걱정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래채에 가서 쌓아진 나무들을 찾다보니 별별 나무들이 다 있는게 아닌가. 이 나무들을 섞어서 나의 잠자리를 따끈하게 할 때마다, 이것들을 발로 확 밟아 토막을 만든다든지, 굵은 것은 톱으로 썰어 토막을 만들어 아궁이에 넣기 시작했다.
감나무불의 색깔은 바랜 노란색으로 작은 가지가 아니면 상당히 느긋하게 타오른다. 성급하지도 않고 불의 힘도 상당히 좋다. 약간 어두운 빛으로 슬픈 느낌이다. 하지만 대나무는 넣기가 무섭게 불이 붙고 하얗고 아주 밝은 색으로 순식간에 타오르며 매듭과 매듭 사이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며 팡팡 터지는 것이 많아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불의 향연을 준비하려면 단연 대나무다. 수입종인 나왕은 불이 붙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고 불꽃도 힘차다. 타닥타닥 작은 소리도 내며 탄다. 불의 빛깔은 거의 하얀색, 그러나 불쏘시개로 넣어놀고 조금 다른 일을 보고 올라치면 어느새 다 타고 없어 자꾸 지켜봐야 할 귀찮은 놈이다. 매화나무, 이놈은 속이 굉장히 단단하여 웬만한 두께면 톱으로 썰기도 무척 힘들다. 덕분에 불의 힘은 별 볼 일 없어 다른 나무와 함께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약간만 넣어 두고 동물의 왕국을 보고 나와도 그 때까지 아른거리고 있다. 불의 빛칼은 약간의 푸른 빛.
서까래를 뜯어 놓은 나무가 있어 가만히 살펴보니 소나무다. 직경이 거의 10센티 가까이 되는 정도여서 톱으로 알맞게 썰어 감나무가 거의 탈 때 쯤 2개를 집어넣는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타오르는 빛깔은 노란색과 빨강색의 중간, 진짜 불꽃으로 힘차게 타오른다. 아주 알맞게, 온돌이 느긋느긋 데워지는 속도로, 대나무나 나왕처럼 엄청난 불의 소비도 거의 없이, 고운 그 순수의 불꽃으로 연소한다. 아름다움이란 이것이구나.
세상에 소나무 불꽃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
내 속에 담겨 있는 송진의 힘으로 나 이렇게 그대에게 아름다운 불꽃을 바치노라.
나는 그날 꿈도 없이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 내내 피곤함도 잊은 채 일을 하였다.

[저자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 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