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심은 뜻은

기고
감나무 심은 뜻은
  • 입력 : 2021. 10.18(월) 07:18
  • 영암일보
김도상 작가
감나무를 생각하면, 누구나 먼저‘나훈아’의 노래‘홍시’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홍시의 그 부드럽고 달달한 감촉과 맛이 우리들 감각세포 깊숙한 곳에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또 생각나는 것은 호랑이도 무서워했다던 곶감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들 추억 속에 정녕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파란 잎속에 감추어진 노오란 감꽃에 엮인 아련한 추억일 것이다.
비온 뒤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무명실에 주저리주저리 투박하게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치고 폼을 내며 동네를 다 쓸고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한 알씩 빼내 먹던 그 기억이 시골 출신이면 누구나 아련히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감꽃으로 예쁜 꽃반지나 팔찌를 만들어 좋아했던 친구에게 얼굴 붉히며 건네주고는 '뒤돌아서 뛰어 왔던 그런 기억들을 어느 글에서 보고 크게 공감도 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감꽃을 볼 때면 그 시절의 설래임이 다시 느껴지는 듯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한다. 감나무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기억 외에도 내게는 아주 특별한 사연 하나가 있다. 옛 고향 집 마당 담장 한 켠에 수령이 100여 년 된 큰 감나무가 하나 있었다.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이 나무는 '아버님 태어나시기 20년전에 할아버지께서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아버님께서 74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나무의 수령을 대강으로도 그렇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 나무가 내게있어서 남다른 감회와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그 나무와 아버님의 생애(生涯)와의 신비한 관계 때문이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아버님 돌아가시기 직전 즈음에 투병 생활로 누워계실 때부터 그 튼튼했던 나무가 공교롭게도 고사 되기 시작했고, 돌아가신 그해에 완전히 썩어 밑둥치만 남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심으신 그 나무는 결국, 아버님과 생애(生涯)를 같이 하다가 아버님과 함께 나란히 떠나간 그런 특별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감나무도 그 수령을 마쳤다. 아버님 돌아가신 이듬해에 가족들은 의견을 모아, 아쉽지만 옛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대지를 정지하고 담장의 기초를 쌓을 때 고사 되어 썩은 그 감나무의 밑둥치를 파내야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뿌리를 캐내던 그때 캐낸 그 뿌리를 보는 순간, 문득‘용비어천가’의 한 구절,‘불희 기픈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가 생각났고, 시인‘정호승’의‘뿌리의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알렉스-헤일리’의‘Roots’란 소설이 떠올라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아! ~ 저 감나무 뿌리가 우리 할아버지를 거쳐 아버님까지 이어져 내려온 우리 가족사를 지켜보며 기록해 온 그 뿌리가 아니었던가?’ 할아버지께서 그 나무 심으실 적에 나무에 그 간곡한 기원,‘아버님과 함께하며 아버님 생(生)을 잘 지켜 주시라’는 그 소망을 함께 심은 것이 아니었을까? 저 뿌리에 기록된 할아버지와 아버님의 삶은 책으로 펴내도 몇 권은 족히 될 진데, 비록 나무는 죽었지만, 그 기록을 새긴 뿌리마저 내가 이렇게 캐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땅속에 묻어 두어도 될 것을, 담장 기초공사로 제거가 불가피하다는 건 내 얄팍한 마음의 변명이 아니었는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렇게 옛집은 철거되고 당시 유행이던 벽돌 슬라브집으로 다시 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집을 짓게되었고 앞마당 그 자리에다 마침내 다시 새로운 감나무를 심게 되었다. 나무를 다시 심을 때, 그간의 들춰 내지 못했던 내 양심의 가책을 그나마 털어낼 수 있었고, 이 집에 살아오신 조상님들과 나, 그리고 후손들로 이어질 그 연결 고리, 우리 가족의 뿌리를 옛날의 딱 그 자리에 다시 심게 된 것이다. 이 일을 하는 과정에 참으로 신비롭고도 새로운 의미 하나를 찾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이어지는 감나무의 생존 기간이 그 숫자적 배열에서 어떤 오묘한 그 어떤 의미 를 느끼게 되었다. 아버님 태어나시기 20여년 전에 심어지고, 아버님 살아 80여년(총수령 100년)을 함께했으며, 아버님 돌아가시고 20년 후에 다시 내가 여기에 심게 되었으니, 이 숫자적 배열의 고리 즉,‘20-80-20’이란 대칭적 순열(順列)이 20년 후인 지금의 이 시점에 반드시 이 나무를 여기 심어야만 한다는 그 어떤 계시(啓示) 같은 것 같이 느껴졌다. 이제 이 나무가 다시 여기에 심어졌으니 그전의 나무가 그랬듯이 이 나무도 앞으로 이‘터’에서 여기에 있을 후손들의 미래도 그렇게 기록해 나갈 것이라 믿어간다.
그간 세월은 많이 흘러갔어도 아버님 살아생전 집안의 감나무에 대해 우리들께 들려주셨던 말씀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님께서도 할아버지로부터 들으신 것을 대물림으로 전해 주셨던 그 말씀! ~너희들은‘감나무 심은 뜻을 아느냐?!’그것은 바로‘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의 오상(五常)’을 따르란 뜻이란다.’~‘옛부터 단풍 든 감나무 잎은 시엽지(枾葉紙)라 해서 글 쓰는 종이로 삼았으니 文을 숭상하고, 단단한 나뭇가지는 화살촉으로 썼으니 武를 익히며, 감은 겉과 속의 색깔이 같으니 표리부동 하지않으니 忠을 지키고, 홍시가 되어 어르신이 자시기 편하도록 하니 孝를 다하는 것이고, 서리 내릴 때까지 버티니 節義를 가지란 뜻이란다.’라고 역설하셨었다. 이제 새로 심은 이 감나무는 그 옛날의 나무처럼 세월 속에서 잘 자랄 것이다. 옛 노래에‘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란 소절이 있다. 나는 여기에 견주어 우리 아이들에게‘감나무 심은 뜻은 조상님 가르침 받자 함이니’라고 기꺼이 말해 줄 것이다.


[저자약력]
계간「문장」신인 작가상수상( 2013수필가등단 )
한국문인협회 대구지부 수필분과 위원
(사)이상화 기념사업회 이사
대구市 공무원문학회장(제8대)역임
전)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현)대구종합복지회관 금빛대학 인문학 강좌 교수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