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생경했던 지금의 일상품

기고
처음엔 생경했던 지금의 일상품
  • 입력 : 2021. 10.18(월) 07:23
  • 영암일보
박석구 에세이스트 작가회의 홍보위원장
만남이라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기억의 퇴적층에서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최초의 만남은 아마 ‘태어남’일 것이다.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일가친척을 만나고 마을과 마을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면서 우리는 만남의 범위를 넓혀간다. 유아기나 소년기의 대부분의 만남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생의 중요 부분을 점령하며 기억에서 놓여지질 않는다. 하여 고향은 영원히 우리 정신의 동반자가 되어 삶의 과정에서 명멸을 거듭한다. 오죽하면 김형수나 김민휴가 이메일 첫 부분 단어들을 자신의 고향 이름인 함평의 밀래미(millemi)나 해남의 섬지(summji)로 쓰고 있을까? 우리 아버지는 스스로 호(號)를 우리 마을 이름인 월암(月岩)으로 부르신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동질집단에의 귀속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고향은 우리들 삶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어서 일생에 몇 번씩 힘든 경우가 닥쳐올 때, 우리가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하는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고향을 주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담양 수북의 겨울 들판을 걷다가 내 고향마을의 풍경과 흡사해 생각나서 써본 것이다. 내 고향집은 15년여 전에 전통 부엌을 입식 부엌으로 바꾸었는데, 처갓집과 측간은 집에서 멀리 있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고집으로 화장실을 그때까지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명절 때마다 시골에 가면 그때는 어렸던 내 아이들이 가끔 똥물이 튀겨, 코를 쏘는 듯한 합수(合水) 냄새 때문에 한나절은 옷을 털고 다녀야 했고, 밤에는 너무 컴컴하여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질겁하는 것을 보고, 내 고집으로 3년 후 세면실 옆에다 화장실을 만들어버렸다. 처음엔 못마땅해하시던 아버님은 4년 전부터 허리 고장으로 지금의 화장실까지 엉금엉금 기어가 요긴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화장실. 우리가 변소, 뒷간 또는 측간으로 불렀던 것을 화장실이라고 일상화적으로 부르게 된 것은 수세식 변기의 힘 때문일 것이다. 꼴 꼴 꼴 꼬르르르 뽈깍하고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배설물을 온데간데없이 처리하고는, 또 그만큼한 물을 졸졸졸졸 흘려 얌전히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수세식 변기의 이 편리함이야말로 배설하는 즐거움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의 집에 갑자기 물이 3일 간 끊겼다던가, 화장실이 막혀 도저히 배관이 뚫어지지 않을 때, 그 똥무더기를 보면서 시골의 변소가 그리울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광주 아버님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광주관광호텔 소극장에서 라틴계 댄스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호텔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가보았는데, 아마 신문기자였던 아버님이 티켓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이나 올려보아야 끝이 보이는 천장이나 넓디넓은 프로어 내부에 기가 죽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손에다 짝짝이를 끼고 두 남녀가 발을 타닥타닥 구르며 마주보고 추는 춤은 그때만 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어쩌다 거의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빤히 쳐다본다든지, 여성 댄서
의 허리를 휘감고 눕히고 할 때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나는 온몸에 끼치는 강한 성적 소름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소극장은 관중들로 꽉 차 더운 열기와 함께 이따금 쏟아지는 박수소리와 함께 펄펄 끓고 있었다. 이때 똥이 마려웠다. 화장실은 남녀 그림이 있어 쉽게 찾아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처음 본 수세식 변기는 비록 쪼그려 쏴 자세인 것이었지만, 바닥에 똥 떨어지는 구멍도 없이 깨끗하고 반질반질하게 파진 그곳에다 차마 일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나와 다른 곳이 있나 찾아도 봤지만 있을 턱이 없고 결국 거기다 볼 일을 보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배설물을 이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고, 돌돌 말아진 화장지를 풀어 밑을 닦고는 뒤에 있는 휴지통을 훔쳐보며 내린 결론은 분명히 화장실은 맞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변기 앞에 있는 송곳의 손잡이처럼 생긴 돌기를 발견했는데, 그게 뭘까? 하고 잡아당기자, 세찬 물살이 쏴하고 변기에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배설물을 훑고 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 절묘한 세척을 보면서 경악과 감탄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제 물을 잠그려면 손잡이를 뒤로 밀면 되겠지 하고 손잡이를 자신 있게 밀었다. 하지만 물은 더욱 세찬 물살만 남길 뿐 멈추질 않는 것이었다. 다시 당겨보고 밀어보고 위 아래로 흔들어 보고 눌러보고 위로 올려보고 하였지만 물은 더욱 맹렬히 쏟아질 뿐이었다. 나는 누군가 귀한 물을 이렇게 엄청나게 쏟아내는 놈을 잡으러 올까봐, 황급히 화장실을 뛰쳐나와 소극장 맨 구석에서 그 멋있는 춤은 보지도 못한 채 쭈그리고 앉아서 춤판이 끝날 때까지 온 가슴을 졸이며 숨어 있어야만 했다. 오늘 아침, 나는 수세식 변기에 느긋하게 앉아 어제 마신 술 때문에 푸다닥 쏟아지는 묽디묽은 배설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보면서, 얄팍한 지식의 화장(化粧)을 덧씌우기 하고 있다.


[저자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 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