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대루(晩對樓)’에 홀로 서서

기고
‘만대루(晩對樓)’에 홀로 서서
늦게 이룸의 더한 가치, 기다림의 미학
  • 입력 : 2021. 11.02(화) 10:20
  • 영암일보
김도상 작가 전)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행정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어느 한 여정 중에 우연히 마주하게 된 특별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강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그런 경험들을 더러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강한 느낌'은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하나의 교훈으로, 때로는 큰 깨달음으로 오랫동안 자신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여기서 이 강한 느낌이란 것은 어떤 연유로 갑자기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당시 자신에게 직면한 현실적 문제와 그로 인한 깊은 심로(心勞)에 빠져 있을 때 그와 관련된 한 장소의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 깊은 깨달음이 있어 일어나는 정서적 반전의 힘일 것이며 스스로에 대한 두터운 위로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런 특별한 장소를 살아가며 몇 번씩이나 찾게 된다. 그것은 또 다시 일어나는 동일한 심로와 정서에 대해 다시 또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자 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도 이런 특별한 장소가 한 군데 있다. 지난 한 때 내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 장소에서 그 당시 나의 현실에 대한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고 또, 그 장소가 나에게 주는 깊은 의미를 되새겨 가며 스스로 용기를 일으켜 보기도 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간 오늘, 다시 찾은 이곳은 바로‘하회마을’에 자리한,‘서애 유성룡’선생과 그 후학들이 건립한‘병산서원(屛山書院)’의 ‘만대루(晩對樓 )’였다.
안동에서 낙동강을 따라 얼마간을 내려오면,‘하회(河回 : 물도리 동) 마을’이있고, 그 동북편의‘화산(花山)’자락에 낙동강 건너 병산(屛山)’이 한눈에 내다보이는‘병산서원(屛山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지난 시절을 회상해 가며 다시 이 곳을 찾았다. 서원을 들어가는 출입문인‘복례문’을 지날 때,‘세속 된 몸을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그‘극기복례(克己復禮)’의 뜻을 몇 번이고 다시 되새겨 본다.‘복례문’을 지나고 나면 높은 계단 위로 웅대한 누각(樓閣)하나가 늠름하게 서 있다. 이 누각이 바로 오늘날까지 내게 뼈에 저린 교훈과 깨우침, 그리고 용기를 주었던 그‘만대루(晩對樓)’다. 다시 찾아온 눈앞의 이 누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 없었다. 이 누각이 내게 주었던 교훈적인 의미와 깨우침으로 나는 작으나마 소소한 내 성취 이른바 '소확행'을 이루어 낼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누각 앞에서 새삼 더 마음이 숙연해 졌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이 누각에 대한 유래를 들어가며 나는‘만대(晩對)’라는 이 루명(樓名)이 지닌 큰 의미에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만대(晩對)’라는 말은 당(唐)시인‘두보(杜甫)’의‘백제성루(白帝城樓)’에 있는 한 소절인‘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 푸른 절벽은 의당 늦을 녘까지 대할 만하고)’에서 따온 말이다. 여기서‘서애’선생님께서는 이‘만대(晩對)’라는 그 의미를 한 단계 더 심화시켜‘푸른 절벽의 풍광은 늦을 녘에 대함이 더 아름답다.’라 해석하시고 늦은 만남에 대한 더한 가치를 부여해 준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며 성취욕(成就慾)에 급급하여 내실 없이 이루어내는 급조의 성취란 것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그 성취욕으로 인해 부질없는 마음의 생채기로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했왔던가? 비록 빨리는 이루지 못했더라도 성취의 의지를 잃지 않고 늦게 이루어 낸 성취가 얼마나 더 가치로웠던가?! 기다림의 끝에 본 늦둥이가 그 늦은 만큼 더 소중하듯이 늦게 이룬 성취는 그 만큼 더한 가치가 거기에 스며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만대루’는 이 루명(樓名)에 내재 된 의미만큼이나 건물의 외형적 의미도 크다. 건물의 규모나 구조적인 형태가 오늘날에 시사하고 있는 뜻은 지극히 철학적이며 또 교훈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누각에 오르는 통로는 누각 밑층에서부터 시작되며 아래는 굵은 원목 나무 기둥으로 튼튼히 받혀져 있고 그 위의 정자는 창호와 벽이 없이 일곱 칸의 넓이로 앞이 훤히 트여있다. 누각의 공간은 수평이 주는‘평등’의 의미와 사방이 훤히 트인 구조로‘개방’을 말해준다. 누각 마루에서 조망되는 풍경이란 마치 대형액자에다 병산과 낙동강의 풍경을 실제의 크기로 담아낸 초대형 액자 같다. 만대루 전방의 병산 앞을 직선으로 흐르고 있는 낙동강과 누각의 처마는 나란히 수평을 이루어, 보는 이의 시선이 위로도 아래로도 치우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평소‘서애’선생님의 가르침을 한눈에 보여주는 건축이다. 위를 부러워할 필요도, 아래를 무시하지도 않는 수평적 기준으로 사유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라는 크나큰 교훈이다. 다시 찾은 이‘만대루(晩對樓)’에 나는 또 홀로 섰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지난 날을 하나씩 헤집어 보았다. 공직생활 당시 승진이 늦다고 얼마나 큰 마음의 생채기를 냈었던가?! 대학 강단에 서보겠다는 꿈으로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직장일로 바빠 논문을 빨리 완성치 못해 얼마나 실의에 빠졌던가?! 그러나, 비록 늦기는 했으나 결국 승진도 했고 학위도 받아 강단에도 서게 되었다. 늦게 대하는(늦게 이루는) 성취였기에 지금의 순간에 나는 더 감회에 젖는 것이 아닌가?!‘정수유심 심수무성(靜水流深 深水無聲)’~고요한 물은 깊게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성취의 여부를 조급한 마음으로 요란하게 가늠질 하지말자!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깊은 신념을 마음속에 지닌다면 긴 기다림의 끝에는 반드시 이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곳‘만대루’는 내 삶의 영원한 교훈으로 지금도 앞으로도 여기 이자리에 유구히 서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