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순이

기고
명순이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 입력 : 2022. 01.12(수) 16:54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그날 아침, 안경을 닦으려고 안경알을 들여다보았을 때, 빠진 눈썹이 네 개나 붙어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없거나 한두 개 정도였는데···․

그 부지런함이라니.

새벽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셔서 밥하고 반찬하고 물까지 우물에서 길러놓으신 후, 날이 새자마자 집 근처 밭으로 달려가 김을 매고는, 아이고 허리야 하는 말을 늘 중얼대면서도 밤에는 명주 베 길쌈을 밤늦게까지 하곤 하시던 할머니. 그 부지런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내 동생 명순이.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먼저 긁어갈까 봐 어스름 여명 속에 우리네 솔밭에서 떨어진 솔잎을 갈퀴로 긁어 집으로 돌아와야 안심했던 애. 그리고 밤새 떨어진 풋감을 어느새 주워와 돌통에 담가놓던 애. 어느 여름, 지독한 가뭄이었을 때, 어느 정도 자란 배추밭에 500미터나 떨어진 냇가에서 수백 번이나 양동이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날라다 배추에 물을 주곤 했던 애.

그 애가 광주로 올라온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신문기자여서 어느 정도 먹고는 살았는데,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과 간첩인 줄 모르고 이야기했던 죄로 신문사에서 해직되자마자 우리 집은 급속히 기울고 말았다.

그 애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혹독한 추위와 가난이 함께했을 때, 혼자 외투 하나 없이 학교를 다니던, 그래서 그 두껍고 낡은 아버지 외투를 세탁소에서 고쳐 입었던 그 촌스러움을 아무런 말 없이 견디던 애.

내가 군대 있을 때, 오빠 고생한다며 타월 공장 경리를 하면서 받은 작은 봉급에서 제 옷 하나 제대로 사 입지 못하면서도 나에게 틈틈이 용돈을 부쳐주던 그 애.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얼마간의 빚까지 지고 완전한 빈털터리로 광주에 도망 왔을 때, 전세금을 고스란히 마련해 주었던 그 애. 우리는 커오고 살아오면서 얼마나 싸우고 웃고 울고 했던가. 그 고스란히 삶 속에서 나는 그 애에게 빚만 지고 살았는데.

그녀가 죽었다.

이제 살만하니까. 급작한 뇌출혈로. 말 한마디 못하고.

그날, 곧 장마가 온다 하여 내 남동생과 영암집 감나무 밭에다 부랴부랴 농약을 하고 완도로 내려와 저녁 걱정을 하고 있을 무렵, 광주로 올라간 남동생에게서 그녀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의 응급실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이미 그녀의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건강한 애였는데, 하느님이 그렇게 하지는 않으실 거야. 하느님이 그 애에게 좀 쉬라고 신호만 한 걸 거야. 암, 그럴 거야.

“의사가 그러는데, CT 촬영을 한 결과 뇌에 피가 완전히 번져 혈압이 30밖에 안 되고 이미 뇌사상태라서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데요. 형님, 어떻게 할까요?”
병원으로 가는 도중, 남동생의 기막힌 전화에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워야 했다. 그 애 남편은 해외여행 중이었다.

“살려라. 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그래도 살아있는 모습이나 보여줘야 않겠니.”

완도에서 광주로 가는 동안, 어릴 적 그 가난 속에서도 같이 부대끼며 살아왔던 기억이 사진첩처럼 지나가면서 나는 눈물 땜에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몇 번씩 쉬어야만 했다. 그것도 늘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외투의 안쓰러움이 내 가슴을 찢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전, 그 애의 남편이 급성 후두염으로 기도가 막혀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으로 집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을 때, 그날 묘하게도 집에 빨리 간 그녀가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 3일 만에 살려낸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10분만 늦었어도 죽거나 의식불명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었다는 의사와 말과 함께. 그런데 이번엔 느닷없이 그 애가 쓰러지다니.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째, 아침 7시. 그녀는 마침내 길지 않은 숨을 거두었다.

남편이 소식을 듣고 도착하기 10분 전, 또다시 심폐소생술을 하여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지 딱 하루 후, 그리고 뭐가 아쉬운지 다시 맥박이 뛰고 다시 긴 숨을 쉬더니, “나 살리고 니가 죽어야”라는 남편의 오열을 들었는지 눈물 한 방울이 뺨에 닿자 그대로 멈추었다.

개띠, 58년 생.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세 아들들과 두 살 위인 남편, 그리고 70대 중반인 시어머니를 둔 채였다.

비는 시름시름 내리고 비에 젖은 안경을 닦으려고 안경을 벗는다. 떨어진 눈썹 하나. 그대로 안경을 쓰고 만다.

저 작은 삶에,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과 함께, 눈물이 펑펑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보다 나와 가장 많은 형질을 공유했던, 가장 가까운 혈육을 처음으로 먼저 보낸 그날.

내 동생 명순이.

[약력]
저자 박석구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