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게

기고
도둑게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 입력 : 2022. 04.22(금) 13:47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그녀는 용감하게 다시 돌아와 있었다. 굽은 마을길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문 옆, 어둑한 방의 구석, 축축한 채 개켜져 있는 무명 이불에 기대어 희미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하지만 호흡은 없었다. 순간 그녀가 덮어 놓은 보자기 속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로도에서 소록도로 가는 해안을 따라 도는 길은 언제나 한적했다. 나로도 우주센터와 소록도 국립병원을 오가며 통신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해야 하는 나는 그 길을 자주 다녔다. 대부분 사람들은 고흥읍을 거쳐서 가는 길을 택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면 들물 때 느끼는 넘치듯 출러이는 바다의 가득함과 날물 때 보여주는 갯벌의 기이한 무늬, 편안한 모래사장의 풍광 등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8월 중순쯤이었다. 하늘과 바다, 산과 들이 푸름으로만 대랄리며 일렁이는 모든 풍경이 한없이 좋아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래가 곱고 경사가 완만해 좋은 피서지로 알려진 발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마주보며 조그만 산허리를 빙 돌아서 가기 때문에, 드넓은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들이 주는 아름다운 시야에 눈길을 그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소록도에서 일을 조금 늦게 마치고 나로도로 돌아가는 도중, 발포해수욕장이 가까워지자 보름달이 떠올랐다. 달이 점점 떠올라 바다를 은빛으로 물들이고 잔물결이 일며 달빛을 사방으로 펼치는 광경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눈길을 온통 바다 쪽으로 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차바퀴에서 뭔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바다로 향하던 눈을 길 쪽으로 돌렸을 때, 보름달과 헤드라이트에 비친 길 위의 풍경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차를 세웠다. 엄청난 숫자의 붉은 모습을 한 게들이 산 쪽에서 바다로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해안가의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는 도둑게였다. 그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앞선 차들이 밟고 지나간 게들의 주검도 부지기수였다. 동료의 사체를 넘어가며 왜 도둑게들은 바다로만 가야 하나? 순간 내 유년 시절의 그녀가 왜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 싸움을 잘하는 6촌형님이 있었다. 6.25 전쟁 때 부모님을 모두 잃어 우리 할머니가 맡아 키워 친형처럼 지낸 사이였다. 자기도 자칭 ᄊᆞ움의 고수라는 한 여자가 그와 대결을 원했을 때, 그는 남녀는 서로 사랑을 하는 거지 대결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양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대결을 신청해와 어느 날 그녀와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동네 꼬마들이 지켜보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작은 초원에서, 그녀가 몸을 솟구쳐 회심의 3단 옆 발차기로 그의 얼굴을 가격하기 직전, 그는 그녀의 발을 바라보는 쪽으로 얼굴을 순식간에 돌리며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발이 지나가는 곳으로 얼굴을 날리면서 그녀의 엄지발가락을 쪽 소리가 나게 빨아버렸다. 그녀는 그 자세로 풀잎을 베어내듯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물었다.

“이게 어떤 초식입니까?”

그는 입을 닦으며 씩 웃었다.

“신체접부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무슨 초식이라구요?”

고수는 침을 뱉고 다시 입을 손등으로 닦았다.

“발 좀 씻고 다니라는 뜻이오.”

그 후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었고 나에게는 우리 마을의 친척 형수가 되었다.

도둑게들은 먼 옛날 바닷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들처럼 바다가 아닌 땅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처음 땅 위에 올라왔을 때, 땅위에 사는 무리들이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어 그들의 몸 색깔을 붉고 칙칙한 색으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동물의 사체나 바닷가에 사는 인간들의 부엌에 있는 밥이나 음식들까지 먹이를 확장하였다. 그래서 인간들은 음식을 도둑질하는 게라는 뜻으로 그들을 ‘도둑게’로 명명하였다.

도둑게들은 늘 바다가 그리웠다. 그런 이유로 바다를 멀리 떠나지 못하고 바다 근처 산 밑에 굴을 파 집을 짓고 생활하였다. 그리고 내가 이너넷 검색창에서 알아낸 도둑게들의 모습은 또 이러했다. 8월의 보름달이 뜨는 어느 날, 아직도 바닷물이 아니면 살지 못하는 새끼들을 위해 알을 듬뿍 밴 암컷들은 밀물이 차오르는 시각에 일제히 바닷물에 알을 깐다는 것. 새끼들은 바다에서 3년을 회유하다가 비로소 땅으로 올라온다는 것. 10월 하순 쯤에는 아직도 바닷물의 온도를 잊지 못하는 그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긴 겨울잠에 들어간다는 것.

우리 군(郡)에서 시시한 싸움꾼이었던 두 사람이 살림을 차렸을 때,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두 마지기 논과 두 마지기의 밭, 동네사람들이 몰려와 흙으로 지은 초가집 한 채가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이었다.

1년이 지나자 바닥난 살림을 견디지 못하고 형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듣는 바로는 화순 어느 탄광의 광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났을 때, 형은 죽어서 돌아왔다. 갱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매몰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시신을 찾았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은 형수의 얼굴에 남편을 잡아먹는 상이 그려져 있다고 수군거렸다.

겨울이 지나고 형수는 어느 봄날, 동네에서 사라졌다. 서쪽으로 난 동네 앞 냇가에서 일주일 동안 서럽고 서러운 긴 울부짖음이 끝난 후였다. 할머니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미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보냈다’고 했지만. 그 뒤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다른 마을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구걸을 하거나 집안일을 도와주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했고 그녀를 광주 어느 색주가에서 봤다는 군내 한량의 말도 다른 풍문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여름 어느 날, 내가 반딧불이를 잡으러 앞 냇가를 가면서 그녀 집을 가로지를 때 그녀가 희미한 초롱불빛의 그림자로 비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배는 불러있었고 그것을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또 여름이 다 간 어느 밤중, 만삭이 된 그녀를 할머니가 매몰차게 쫓아내는 광경을 나 혼자 몰래 지켜본 적도 있었다.

여름휴가를 끝내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방안은 꼭꼭 닫아놓은 문과 창문 때문에 팔팔 끓고 있는 중이었다. 열기를 식히려고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제키고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한쪽 구석에 도둑게 한 마리가 얌전히 웅크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쫓아내려고 손으로 건드려 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어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모든 문을 꼭꼭 닫아놓은 곳을 뚫고 여기까지 들어왔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휴가 가기 전 숨어있다가 닫아놓은 문 때문에 굶어 죽은 것은 아닐까. 나는 도둑게를 조심스레 들고 나와 화단 한쪽 인동초 옆에 묻었다.

아이는 딸이었다. 할머니 손에 자랐다. 지금은 광주에 살고 있다. 가끔 도둑처럼 나를 찾아와 술 한 잔 마시자고 칭얼거린다. 나는 항상 명랑한 그녀가 싫지는 않다. 그녀는 처녀 때 옆옆 동네 총각과 바람이 나서 할머니께 붙잡혀 머리를 숭덩숭덩 잘리고 고방에 며칠간 갇힌 적이 있었다.

[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