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입국심사 <1>

기고
까다로운 입국심사 <1>
자하 옹의 ‘자하산방’
  • 입력 : 2022. 05.04(수) 10:49
  • 영암일보
자하 류용
델타에서 알래스카. 항공편으로. 검색이 얼마나 심한지 신발, 모자까지 벗고 허리띠마저 풀어야 하는 관광객들에겐, 치욕적인 자존심이 문제다. 옆으로 비켜선 별도의 검색을 바등며 내 몰골이 그리도 의심받을 만한 요시찰 대상이란 말인가.

하기야 꺼벙한 턱수염이며, 손질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털이며, 깡마른 체구, 때 국물 흐르는 청바지, 베레모, 이러한 외형들에서 별도의 검색을 받을만한 소지가 다분한 것 같구나. 입국 심사 검색은 더욱 철저하고 치밀했다(중동의 빈라덴 수하로 의심받을만한 몰골이었을까?)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순한 양의 탈을 쓴 채 자국의 국익을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수탈과 찬탈의 전철을 밟아왔던가.

남아공에서, 아라비아 반도에서, 베트남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양분된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은 끝없는 군비증강과 수없는 핵실험을 하면서 약소민족에겐 핵동결 하라며(이라크, 북한) 무력으로 막간 화력으로 초토화시키고 어쩌면 자업자득의 필연인 것을.

대지주들의 소작농에 대한 횡포이듯, 정대, 태봉 친구들은 배드민턴 동우회원들과 온천여행을 떠났다. 우리도 회비(40$)를 선불했지만 우리의 정서와 분위기가 맞지 않아 포기했으니. 품격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만나면 피곤 그 자체였다.

사람의 만남이란 정신의 하모니에서 동화되고 더 깊은 속마음이 오가는 법. 처음 만남이 있던 날. 김도선이란 그 분의 말씀이 정확하다. 밑바닥의 인생들. 생활이 윤택하고 평안했으면 왜 이런 척박하고 이질적인 곳으로 이민을 왔겠는가.

열심히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30년 40년. 이젠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알맹이 없는 철학박사니, 한인 체육회 이사니, 무슨 연구소 소장이니 하면서 거창한 명함, 그리고 교만, 웃기는 애드기들이란다. 그 역시 서슬퍼런 자유당 시절 이제한(국회부의장) 밑에서 비서관이었다고 자부하지만.(내가 보기엔 수행비서로 주먹깨나 썼던 모양이다) 그 무렵 인천에서 주유소도 했다니. 이렇듯 저 마다의 인간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들이 있기 마련이다. 범죄에서, 사기에서, 이혼의 편력에서 또는 부도, 서손의 아픈 상처에서.

또 다른 변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몸부림같은 치욕의 과거들을 멀리와 묻으려는, 사랑이 결여된 조건부의 결혼들에 실망한다.

영주권을 얻으려고 혹자는 시민권을 얻으려고 문명과 정서가 이질된 흑인과 결혼하고 멕시칸과 결혼하고, 그리고 또 이혼하고. 영주권 시민권은 취득했으니.

60이 넘으면 자동적으로 연금 천불(120만원)은 보장받고 병원 무료 치료. 과연 이러한 수순이 그들에게 최상의 목표인지 모르지만 불쌍하고 삭막해 보였다. 정략적인 거래의 혼인관계 그리고 물질의 풍요가 결코 인간내면의 평안한 행복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비록 가난하여도 따스한 인정이 오가는 사람냄새가 나는 한국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부인과 청운교회에 나갔다. (대통령 카터가 지어주었다는 LA에서 제일 큰) 미국에 있는 목회자라서 무슨 종교철학적인 강론이라도 들으려고. 하지만 실망 그 자체였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