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곳에서

기고
한적한 곳에서
김종수 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 입력 : 2022. 06.06(월) 17:15
  • 영암일보
김종수
목사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15~16)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사건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에수님께로 몰려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급한 치유의 일을 제쳐두고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누가복음 5장 15절에서 '무리가 모여 오되'에서 '모여 오되'와 16절에서 '기도하시니라'라는 이 두 희랍어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 과거의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표현한다. 이것은 어느 한 때 예수님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늘 규칙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치유를 받으러 왔다. 얼마나 급한 일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를 드리셨다. 사람들의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분명 사람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를 받고자 왔다. 그러나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는 것이다. 주님이 왜 그러셨을까? 사람들의 형편을 몰라서였을까?

예수님은 말씀과 치유로 꽤나 유명해지신 모양이다. 인기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그 시간을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으셨다. 적어도 예수님에게는 말씀을 전하고 치유를 베푸는 일보다 기도가 앞섰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과 치유의 능력이 기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치유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한 것일까? 그리고 이 은사는 단지 두 손을 모으고 애절하게 부르짖으며 드리는 기도로 얻어진 것일까?

기도란 소원 풀이가 아니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을 보는 것이다. 자신을 보며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채우는 것이다. 그래 사람들로부터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의 능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사람들에게서 영합하여 그들의 숭에 합당한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 밖에 있을 때 오히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정작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만이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바쁘게 산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고, 걷는 중에도 핸드폰을 받는다. 이렇듯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삶은 오히려 메마르다. 손에 쥔 것도 없지만 쥐어도 허탈하다. 성공을 해도 그것은 자기 능력의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감사와 감격이 없다.

기도란 내 안에 또 다른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묻혀서는 발견될 수 없다. 사람들로부터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사람들의 뜻이 아닌 하늘 뜻을 묻는 것이다. 그래야 내 안의 하늘 능력을 찾게 된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