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강가에 빠진 청춘들의 고뇌(2) & 동창회처럼 즐거웠던 캔맥주 파티

기고
보우강가에 빠진 청춘들의 고뇌(2) & 동창회처럼 즐거웠던 캔맥주 파티
자하 옹의 ‘자하산방’
  • 입력 : 2022. 06.25(토) 15:13
  • 영암일보
자하 류용
보우강가에 빠진 청춘들의 고뇌
어느 젊은 청년이 이 곳에 관광 왔다가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의 협곡 속에 용틀임하며 흐르는 물. 그리고 내추럴 브릿지의 폭포되어 굽이치는 보우강 물결에 감동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의 현장.

1년에도 수 십명이 이 곳에서 폭포의 물거품 속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단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선 나르시즘이라 한다. '나르시즈'라는 소녀가 어느 날 호수가를 거닐다가 너무도 많은 호수의 영롱한 물빛에 도취하여 (자신의 그림자)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순간, 그 물 속의 아름다운 이는 자기가 아닌 공주의 아름다움이었단다. 자신을 망각한 그 공주의 아름다움에 그 공주의 물그림자를 잡으려다 결국은 물에 빠져 숨진다. 어쩌면 기쁨이 배가 되었을 때 아니면 극도의 슬픔이 다가왔을 때 우리 인간(사람)들은 망연자실(스스로를 잃어버림)한다고 했다.

이렇듯 이 대자연의 신비 앞에, 감동 앞에 사람들은 경건하면서 때로는 낙엽만도 못한 왜소함을 느끼면서 존재라는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높은 산에 올랐을 때 - 망망대해의 뱃전에서 높은 다리 위에서 - 빌딩 위에서 무서움과 두려움의 공포를 망각한다고 했다. 저 그랜드 캐넌의 협곡으로 몸을 던진 젊은이들.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 간다는 표현이 적적할 것 같구나. 슬픈 영혼들이여.

오늘도 보우강의 거센 물결은 모르는 채 유유히 흐르는데 당신네들의 몸을 던져 폭포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그 많은 고뇌와 좌절과 방황의 사연들이 그 얼마나 많았을까. 합니다.

동창회처럼 즐거웠던 캔맥주 파티
그 옆으로 깎아지른듯한 산. 절벽 위에서 흐르는 실폭포(건기이기 때문에)의 아름다운 (Three Valley Gap)들. 정원 실개천에선 소금쟁이, 송사리, 다슬기, 아름다운 꼬들, 융단 같은 잔디밭. 나도 모르게 잔디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어디선가 '욜레호' 요들송을 부르며 에델바이스 꽃바구니를 옆에 낀 아름다운 알프스 소녀가 다가 설 것만 같구나. 그리운 얼굴들이, 보고싶은 얼굴들이 바람 부는 호수의 잔물결 따라 모자이크 되어져 스러지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이 아름다움의 비경에 감동했는지, 우리방 로비(호텔 로비의 베란다가 아닌 1층의 잔디)에 모이기 시작했다.

산골 마을이라서 술을 파는 가게도 없고 호텔식당 바에서 칵테일로 잔술만 파는데 캔맥주 한 깡에 8$라니.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너무 비싼 것 같구나. 이제 마시고 남은 세 개의 캔 맥주. 우리 방에 모인 14명의 잔에 3분의 1씩을 부으니 14잔이 되는 구나.

물을 타서 한 잔 만들자는 임영오의 제의에 박장대소 하고 일행 중 눈치 빠른 지효순(서울 동촌동 거주)이라는 여인이 박기자(LA 한국일보 경제 기자)와 더불어 그 비싼 캔 맥주를 네 박스 사왔다.

우리 일행은 너무도 감동하여 토마토에 화약성냥을 꼽고 증정식을 했다. 값비싼 맥주라서 그런지 더욱 맛깔스럽고 순식간에 동이 나고, 자신도 30$를 희사하면서 왜 이렇게 자린고비 좁쌀영감이 되었을까 싶었다. 한 박스 값도 선뜻 못 내놓고.

지갑은 LA를 떠나면서 마이너스 250$가 됐고, 우선 용돈 쓰라고 임영호가 준 100$도 덩그라니 30$만 남았으니, 돈의 개념을 모른다는 말이 다시 마음을 스쳐갔다.
대구에서 온 서병호가 50$를 희사하고 조용한 우리의 파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언제나 외톨이로 혼자 다니는 황경자(경주에서 온 여선생), 그에게 오스틴 엘리엇의 여성심리학에 대한 어설픈 강론(오만과 편견)을 펼쳤다.

황선생처럼 도도하고 오만하고 여행지에서까지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여린 속살의 가슴앓이는 더욱 아리고 외로운 법이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일수록 그 누구에겐가 테크니컬한 짜릿한 유혹을 받고 싶은 감정이라고. 표정을 보니 공감이 가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 여성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느냐고.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그리고 졸지에 나는 '류처사'가 아닌 '담임선생님' (봉숭아학당이라 칭함)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서로 간에 마음을 열면 그 알량한 군더더기의 '자존'의 날개옷들을 훨훨 벗어버리는 것을, 서로를 경원하면서 서로를 소원해 하면서, 표정없는 눈빛으로 살아들 가는 것일까?

어쩌면 부정과 긍정의 사고철학인 것을. 그 긴 긴 세월. 도덕과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사상이 이렇듯 인간내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감정과 웃음을 경직되게 했을까?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동서문화의 차이점들이 이젠 벽을 깨고 '넘나듦', 그리고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밤이 새도록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싶구나. 그리고 내 마음의 노래들을 부르고 싶구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하고 시작된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들의 정담과 노래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내일의 밴쿠버 섬으로의 긴 여행을 위해서 아쉬움과 석별의 마음들을 풀어둔 채 우리의 캔맥주 세 깡통으로 시작된 파티는 끝나야 했다. 화기애애한 초등학교 동창회 같은 마음으로.

록키의 만년설 산자라에 묻혀 아름다운 쪽빛 호수들의 품에 안겨 낭만과 목가적인 추억을 묻어둔 채 우린 또 떠나야 한다.

프레이저 강을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장장 8시간, 아리랑 식당의 점심은 상추, 풋고추, 메스껍던 속이 시원하구나.

다음 호에 계속…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