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1년

기고
귀향 1년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 입력 : 2022. 06.25(토) 15:26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진도에서 데려온 황구 '옥금이'와 뒷산에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배가 불러있는 것 같아서 만져보니 새끼를 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7개월도 안 된 애가 벌써 임신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 여름에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앞서면서 심란해졌다.

닭장에서는 닭이 날개를 푸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지면 늘 조용해지던터라 이상해서 닭장을 여니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오후 늦게 닭장을 열어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아침나절, 집 주변의 밭에 콩을 심을 요량으로 농업상담소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콩 소독제와 새들이 콩을 파먹지 못하도록 조류기피제를 콩에 바르는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약이 묻은 콩 몇 알이 마당에 떨어지고 닭이 그것을 주워 먹어버렸나보다.

이곳 영암의 시골집에서는 완전히 나의 나라가 펼쳐진다. 안개와 햇살과 비와 바람, 심은 작물들과 잡초까지 뿜어내는 초록빛, 각 계절의 꽃과 그들의 열매, 어스름과 어둠과 푸른 여명, 별과 달과 구름, 이제는 그들이 스러지며 남기는 낙엽과 새로 심은 마늘과 양파가 푸르게 커 가는 모습은 내가 여기에 있음으로 더욱 선명해지고 내게 각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부르든, 내가 어떻게 표현하든, 내가 어떻게 미워하고 좋아하든 내 주변에서 나를 인식할 수 밖에 없다.

여기는 또한 그들의 나라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을 만나면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들과 동조하고 그들을 만지거나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를 비추고 자라고 나를 감싸고 스쳐가며 나의 눈과 입에 호강을 내려 보내주고 나의 일상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까지 내가 지내온 유랑의 삶에서 그들은 스쳐 지나가고 바라만 보았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같이 살아갈 한 가족으로 변한 것이다.

콩은 나의 바람대로 초기에는 잘 자랐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무성한 콩잎들을 보며 나에게 박수까지 보내올 정도였다. 나도 처음 심었던 작물이 나의 뜻대로 자라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 졌고, 가끔씩 콩밭을 둘러보며 쇠비름이나 바랭이, 방동사니, 까마중 등의 풀들을 손으로 뽑아내며 이러한 식으로 콩이 자라면 우점의 원칙에 따라 잡초들은 잘 자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혼자라는 것이 절절해져서, 마루에 나와 앉아 옥금이를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이미 무성해진 나뭇잎, 달과 별, 어쩌다 내리는 비도 소주에 익어가는 내 가슴에 젖어들어 같이 취하는 때도 많아졌다. 옛사랑이 그리워지고 하물며 잊혀진 사람까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사방은 바람소리만 있을 뿐 늘 조용했다.

내 일터인 안산에서 연락이 왔다. 보름 정도 걸리는 일을 부탁했다. 나는 안산으로 떠났다. 안산의 일은 한 달이 넘어 걸렸고 안산에서 지내는 동안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한 밤중에 안산에서 돌아와 맨 처음 옥금이를 보았을 때,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은 역력하였지만 돌아서자 자신의 집에 들어가더니 흙이 묻은 바닥을 계속 긁어대는 것이었다. 이 자식이 새끼를 날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작년 겨울에 넣어주었던 얇은 요를 꺼내 갈아주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뭔가 낑낑거리는 소리에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옥금이에게 갔더니 이미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 있었다. 옥금이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새끼들의 몸을 계속 핥으며 젖을 물리고 있었고 나를 보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세상에나 검은 털을 가진 새끼 두 마리와 흰 색의 새끼가 네 마리였다. 어미처럼 황갈색 털을 지닌 놈은 하나도 없었다. 대관절 애비는 어떤 털을 가진 개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순간이었다. 에둘러 순종을 원하는 근친교배보다 다른 종끼리의 교배가 훨씬 강하다고 마음을 추슬렀지만, 새끼들은 너무 귀여웠다.

밭으로 나가보니 온통 푸른색이 넘실거렸다. 콩은 벌써 푸른 콩꼬투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아무런 거름과 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 있었다. 그러나 콩이랑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콩보다 더 키가 큰 채로 온갖 잡초들이 이랑을 꽉 매우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옆으로만 퍼지는 풀로만 알고 있었던 쇠비름이란 놈은 콩대에 기대어 기어이 올라가 콩과 키를 다투며 벌써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안산에서 급하다고 연락이 왔지만 그 잡초들을 그 무더위를 견디며 낫으로 베어내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옥금이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이 왔고 감과 모과, 산수유 열매들이 푸른색에서 자신의 색을 띠우며 익어갔다. 옥금이 새끼들은 알음알음으로 모두 다른 이들의 식구로 내보냈다. 그때서야 비가 며칠을 계속해서 왔고 그 비를 맞은 후 노란 콩 껍질이 시커멓게 변하고 말았다.

1년의 귀향 생활을 통하여 느낀 것은 역시 완전한 귀향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텃밭에 심었던 고추 몇 그루는 탄저병으로 여름을 지나지 못하고 뽑혔고, 가지와 토마토는 초기에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아 열매도 작고 부실한 모양들이 많았다. 감자는 20포기나 심었지만 한 바가지 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옥수수는 내가 안산에서 일을 하는 동안 비둘기들의 먹이가 됐다. 콩은 1200평에서 40kg 포대로 열 가마니를 얻었지만 여름 내내 가물었고 가을엔 비가 자주 와서 잘 여물지도 못하고 자줏빛 색깔이 많아서 쓸 수 있을만한 콩을 골랐더니 네 가마니 분량이 겨우 나왔다. 오로지 저절로 발아하여 자란 수세미나 박, 들콩들은 튼튼하게 열매를 맺고 그들을 거두어 아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을 누렸다.

그래도 내년에 더 좋아질 것이다. 모든 작물은 초기에 상처를 주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도 알았고 잡초도 함께 하여야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도 몸으로 터득한 것이다. 여기에서 보낸 1년은 많은 아픔도 같이 했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내가 태어났던 곳, 내가 자랐던 곳, 내가 삶 때문에 떠났던 곳, 다시 내 삶을 위하여 돌아와 아침을 마주하는 곳, 이제 여기서 내 삶을 마치리라 생각하는 곳, 오늘 여기에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고 모든 것들을 잠재우듯 대지를 덮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