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벌레

기고
길잡이벌레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 입력 : 2022. 06.30(목) 14:44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봄의 화홍포구는 한산하다. 노화도로 가는 철선은 자동차 몇 대를 삼키고는 상당한 시간을 글글거리며 떠나지 않고 있다.

바다색에 대해 나는 푸르다 라는 말과 파랗다 라는 말의 차이를 아직도 정확히 구분을 짓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맑은데, 그리고 분명히 하늘보다 파란 빛인데, 우리는 푸르다라고 부른다.

포구의 한산함에 지쳤는지 바다도 잠잠하여 철선의 프로펠러에서 게워내는 그리 세지도 않는 물결을 저 멀리 보내고 있다. 결국 나는 화홍포구에서 물러나고 만다.

몇 개월의 계약직으로, 친구와 함꼐 완도로의 도망은 내 건강 때문이었다. 4년 정도 학교 매점을 맡으며, 그동안 미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반 평 남짓한 카운터에서 하루종일의 생활은, 원래 돌아다니기를 좋아한 내 몸과 정신에는 치명적이었던 모양이다. 12시간이 넘는 반 평에서의 끊임없이 반복된 일상은 아침이 되어 매점에 들어서면, 바라보이는 카운터가 끝내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미 내 몸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천에 널려있는 과자를 탐닉하는 것으로 체중이 78kg까지 불어 있었다.

어쩌다 가슴이 찢어질듯한 찡한 통증을 느끼고, 맥박이 세 번 뛰고 한번 쉬는 부정맥을 감지한 나는, 짬을 내어 찾아간 순환기 내과 의사에게서 바로 심장병이라는 병명을 통보받았다. 심실판막증에, 부정맥에, 혈압은 이미 200이 넘어 있었다.

그리하여 허접한 나머지 삶이나마 주섬주섬 챙기려고 이곳을 온 거였지만, 나의 새삶은 내 자신이 찾아갈 정신의 해이와 다짐의 충돌로 이어질 것이었다.

전신주의 전선이나 그것들을 잡고 있는 애자나 시설물들을 디지털 카메라에 하나씩 담는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50미터, 혹은 그보다 짧거나 긴 거리를 유지하는 전신주들을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조사표에 적는 것.

산길로 접어든다. 이 산길에 전신주가 연이어 세워져 있다는 것은 이 산길의 어딘가, 아니면 끝자락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의미다.

땀을 흘리고 넘어야 비로소 바다 같다며
목 쉰 향수(鄕愁)를 부르며 가는 그를
앞세우다.
숨차 내쉬는 숨결 도중마다 그 새 적막이 한참이다.
노래에 흩어지다. 한참이다. 흩어지다.
서너 마리
길잡이 벌레는 신나서
박자처럼 길 따라 날아가 앉고 다시 날아가 앉고
산길 끝에서야 노래가 끝나자 사라지다.

바다 바람이 탁 다가온 바다와 함께 달려와
저절로 소리를 내지르게 하다.
비로소 바다라는
바람 부는 바다.

화홍포구를 가기 전 왼쪽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그 산 너머 바닷가에 우럭을 키웠던 축양장 때문이었다. 그 축양장은 이미 찢어진 하우스 비닐들이 갈래갈래 날리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활어 값의 폭락 때문에 망해 버려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해변은 수많은 둥글둥글한 갯돌들이 넓은 밭을 이루고 있어, 우리는 뽀스락거리는 돌을 밟으며 허위적허위적 걸어 나갔다.

숲 저편에서 뻐꾹새가 울고 있었다. 비로소비로소 여러분을 두고 도망친 내 가슴이 뻐꾸기며 아파왔다.

뽀스락, 뻐국, 뽀스락, 뻐꾹

이곳은 그 흔한 갈매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물은 너무 맑았다. 나는 눈물이 나도록 기침을 토해냈다.

돌아오는 산길에, 길잡이벌레는 또 다시 나를 맞이한다. 진한 녹색의 등에 새빨갛고 새까만 점들이 점점히 찍혀 있는 선명한 색의 곤충. 이 곤충의 이름은 아직도 모르지만, 어렸을 적, 길 따라 포르릉 날아 저만치 다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 곤충을 잡아보려고 얼마나 뛰어 다녔던가. 숨 차 뒤돌아보면 다시 길 위에 앉아 그 선명한 등을 햇빛에 반짝이며 ‘어서 와봐. 우리는 숨박꼭질장이야’하는 자태로 마주치면 금방 날아갈 듯한 모습을 보이던 길잡이 벌레.

도시로 들어와 식생에 고단하여 저물어가는 이 나이에 유년의 산판 길에나 들길에서 흔하게 보았던,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에도 사라진 이것들을 다시 볼 줄이야. 그들이 내 멍든 가슴을 알아차리기야 할까마는 포르릉 날아 다시 길 안내를 맞는다.

잘 가. 잘 가서 열심히 살게나. 몸도 추스르게나.

아마, 축양장을 떠났던, 이 길을 만들어준 이들에게도 이렇게 했으리라.

잘 가. 혹시나 다시 오거든 너의 보금자리였떤 곳으로 다시 데려다줄게.

*덧붙임 ; 추후 이 곤충의 이름을 찾았더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순 우리말로 ‘길앞장이벌레’였습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