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풍경

기고
우리 집 풍경
군서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4. 04.11(목) 13:08
  • 영암일보
박석구 문인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으로 생각되니까, 내 나이 대여섯 살쯤인가 보다.
우리 집을 가졌다. 그것도 흙벽으로 된 초가집을.
서울에서 푸른 삶을 펼칠 꿈을 가지고, 어머님과 어린 나, 그리고 두어 살 된 동생을 데리고 뚝섬에 도착한 아버님은, 그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 땜에 간신히 만든 판잣집에서 겨우 동사(冬死)를 모면하고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주 어렴풋이 아버님이 판잣집을 고치거나 나무로 만든 탁자에다 이불을 깔고 잤다거나 밭에서 채소를 돌보고 있는 어머님의 생각이 나지만 사진처럼 정지된 장면만 기억될 뿐이다.

그것도 달랑 이 세 컷뿐.
여러분이 나의 글을 읽으면서 혼동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고구마'처럼 일상적인 가난함을 이야기하다가도 '목화밭'처럼 베를 짜는 과정의 고단함을 이야기할 때도 있으니까.
사실은 이렇다.
당시 우리 큰집은 7대 종가집으로 이어오면서 논과 밭이 꽤 있었고 집도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져 있어 그럭저럭 살만한 집안이었지만 큰아버님이 자식 생산을 못하셔서 내가 늘 큰 집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겨울엔 할머니 품속에서 잔 적이 많았던 그런 어린 시절을 유지하였기 때문인 것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집에 대한 개념은 항상 두 집이 혼재되어 표출되곤 한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모든 제사나 명절상, 시제를 모시고 있고 그 집으로 귀향하여 살고 있다.

그다음 해 봄.
큰 집에서 서남쪽으로 150여 미터 떨어진 까끔-이게 사투린지 모르겠으나 마을 주변의 조그만 숲 정도?- 귀퉁이를 깎아 마당을 만들고, 까끔 가운데 높은 곳을 헐어 지게로 날라 물에 갠 황토를 동네 사람들이 떡매로 치고 다듬으며 벽을 쌓아갔다.
벽이 완성되자 그걸 네 칸으로 나누고 맨 왼쪽은 부엌, 가운데는 마루와 큰 방, 오른쪽 뒤쪽은 고방, 앞쪽은 작은 방을 만들었다.
대를 엮어 황토를 덧씌우고 볏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부엌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큰 항아리를 묻고, 판자 두 개로 발판을 만든 다음, 어른 팔뚝 정도의 소나무 세 개를 삼발이 형태로 세운 뒤 대나무로 엮고 볏짚을 덮어 선사시대 주거 모양으로 측간을 만들었다.
부엌 앞마당에 잔돌로 장독을 만들고, 물은 큰 집에서 길러다 먹었다.
초기엔 그것이 전부였다.
차츰 측간 쪽에 집을 지어 측간과 돼지우리, 헛간을 두었고 작은 방 옆쪽을 달아내 군불용 나뭇가지를 모아둔 창고를 지었고, 장독 옆에다 물을 쏟아내는 뽐뿌를 묻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전기가 들어왔고 둘째 동생이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유학 갈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내 남동생이 측간에서 볼일을 보다가 똥통에 빠져 건져낸 일이나 여동생이 비가 많이 온 뒤 냇가로 나가 걸레를 빨다가 떠내려가 죽을 뻔한 일이나 집안일은 거의 몰랐던 아버님이 어머님이 안 계실 때 돼지에게 하루 내내 죽재 한 바가지만 주었다가 배고픈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가 온 동네를 헤매며 잡으러 다녔던 일.
유년幼年 시절의 추억은 우리 집 마루에서 날마다 바라다보았던 석양의 노을이다.
서편 잔등 저편으로 넘어가는 해는 가뭄이 심할 때는 핏물처럼 새빨갛고, 우기 때 어쩌다 보는 해는 너무 맑아 노란색에 가까웠다.
노을 색이나 해의 크기가 늘 달랐던 것처럼 추억도 어떤 것은 깊고, 어떤 것은 얕고 바랜 사진첩 같은 것이다.

마을 서쪽 외딴집 하나.
고구마밭 건너 조그만 내가 흐르고 동네 아이들이 늘 다니던 학교길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그곳.
해가 지고 어둠이 오면 어머님이 끓여주셨던 수제비를 먹고 동생들과 평상에 누워 별빛만으로 충분히 환한 하늘을 보며 저것은 큰 곰, 저것은 작은 곰, 은하수, 견우, 직녀, 샛별, 북극성, 북두칠성, 오리온, 카시오페이아를 늘상 가리키다 저 별은 내 별, 명순이 니 별은 저 별, 석용이 니 별은 저 별, 아니야 아니야, 저 별이 내 별이야, 어떤 것, 저 큰 것 하다 그만 잠들었던 그곳.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