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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당시 50호 가까이 되는 마을이었던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유학을 가 대학까지 나온 다음, 먹고 살려고 여러 지역을 조금씩 머물며 떠돌다가 환갑의 나이에 막 겨울이 시작될 즈음 귀향했다. 그해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 추웠다. 흙벽으로 된 집은 거의 300년 되어 폐허로 변해있었다. 안쪽 벽에 전부 단열재를 붙이고, 천장을 스티로폼으로 막고 나서 벽지로 마무리하고 나서야 겨우 허연 입김이 나오는걸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봄이 오자, 1000평이 넘는 집 주변의 밭을 바라보며 농사라는 말조차 생경한 나는 이곳에 도대체 무엇을 심어야 하고 어떻게 심고 관리해야 하는지 막막한 가슴을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년과 초등학교를 보낼 때 한 집에 보통 5명에서 10명이 넘어 300여 명이 살아가던 활기차고 시끄럽던 마을은 35호 정도만 남고 빈집도 5채나 되었으며 겨우 40명 남짓 유지하고 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는 날이면 겨우 스무 명 정도만 모였고 50살이 되지 않은 젊은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내가 살았던 시절의 나이 또래는 주변 동네에서도 볼 수가 없을, 어느 때는 하루가 다 가도록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지 못 할 때도 허다했다.
10월의 어느 날, 나는 종님씨에게 마늘을 같이 심자고 부탁했다. 같이 텃밭에 마늘을 심으면서 종님씨가 조곤조곤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니가 우리 마을에 다시 내려와서 살 줄은 몰랐어야. 박씨 아닌 다른 성씨가 몇 명 동네에 살러 오기는 했어도 에릴 때 살다가 다시 내려온 사람은 니 뿐이어야. 그란디 니가 와서 집 고치고 집 안을 정리항께 엄마나 존지 몰라야.
서방이라고 맨날 술 쳐먹고 놈의 집 일이나 간섭하고 화투나 치다가 서른에 배 아프다고 하면서 밤새 피똥 싸다가 죽어분디 방 가운데 식어있는 그 모냥을 본께 그래도 속이 터지드라야.
텃밭 쬐깐 남겨놓고 그렇게 가 분께 그때는 환장하것드라. 에린 딸내미 하나 키우면서 놈의 집 일을 안해본 것 없제. 그때 무네미에서 그래도 반반하고 동갑인 머스매가 자기한테 오라고 했는디 딸내미가 눈에 밟혀서 못갔제. 시상은 그래야. 갈 때 가는 것인 인자는 어특게 살던지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그란디 느그 집이 광주로 이사가고 난 뒤로 우리 동네 여러 집이 서울로 부산으로 막 이사 가불고 아그들도 크자마자 돈을 번다고 도시로 다 가분디 그때부터 동네가 아짐들만 남드랑께. 설이나 추석을 쇠러 올 때만 느그들이 보이는 세상이 되드랑께.
그라다가 점점 보리밥에서 쌀밥 먹는 세상으로 변해 불고, 끼니마다 고기 먹는 시절이 옹께 자식새끼들이 애기도 안 낳드라. 그러니 동네가 애기들은 눈 씻고 봐도 없고 늙은이들만 하나 둘 죽어나강께 인자는 낮에도 걸어댕기는 사람 보기가 힘들어야.
이 동네 사람들은 맨하던 일만 평생을 하고 살지야. 감자 심고 벼 심고 고추 심고 깨 심고 마늘 심고 배추 심고 함시롱. 니가 와서 집 앞에 그 좋은 논을 팔아서 딴 데서 온 사람들 재우는 집을 지을 때, 동네 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다들 그랬어야. 근디 지금 봉께 그것으로 먹고 살아가닝께 다 좋게 봐야.
나는 인자 허리도 못 피어진다야. 인자 먹는 것도 힘들고 딸네미가 가끔씩 와서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가득 차서 넣을 곳이 없어야. 어찌보면 세상은 겁나 좋아졌는디 몸땡이라도 안 아프면 살 것는디 내가 벌어먹는 땅을 그냥 나둘 수는 없응께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환장하것다야.
아이고, 인자 나도 갈 때가 된 것 같아야. 그래도 요양병원에는 절대 안 갈라고 아침에는 날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그래야. 시원한 우리 동네 공기가 나를 건강하게 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야. 니가 나 죽으면 꼭 쬐깐하지만 내 밭 좀 가져가라이. 내가 평생을 빌어먹은 땅을 그때는 누가 지을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니께.
나 좀 봐봐라. 나도 큰애기 때는 겁나 이쁘단 소릴 듣고 자랐어야. 우리 엄니가 설 에 꼬까옷 입혀서 내보낼 때는 우리 고모들이 동네방네 자랑할라고 보듬고 다녔어야. 그란디 이 얼굴 좀 봐라이. 얼굴이 다 검버섯이제? 주름 없는데가 없고 허연 바닥은 아예 없어야. 평생 밭에만 사니까 이 모양이여.
내일은 해가 북쪽에서 뜬다 해도 밭일 다 제켜두고 친정집이나 가볼란다. 엄니 산소나 찾아가 엄니한테 말할란다. 엄니 지금은 내가 엄니보다 열 살 더 많소. 이렇게 산 것이 엄니가 나를 그 좋은 동네로 시집보내서가 아니것소? 밭에서만 살다가 밭에서 죽게 말이오.
- 책 <늙은 시인들의 동네> 중에서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10.23(금) 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