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영암군민들께 청혼합니다! 받아주실 거죠?”

인터뷰
“저, 영암군민들께 청혼합니다! 받아주실 거죠?”
지방선거 특집 <뻔뻔한 인터뷰>
예비후보 릴레이 초대석 ③
이보라미 전남도의원

바쁜 의정 활동에
연애 할 시간 없는 ‘솔로’ 정치인
만나는 어르신마다 “결혼은 언제 해?”

낯설고 두렵던 영암군, 첫인상은 “뭐 이런 오지가”
시간 흘러 적응하니
많은 것 가르쳐준 사랑하는 영암으로
  • 입력 : 2022. 02.23(수) 13:26
  • 유우현 기자
이보라미 전남도의원
<편집자주>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언론사들은 한창 바쁜 시기다. 그래서인가. 이 후보 저 후보, 이 신문 저 신문, 죄다 같은 소리다. 같은 후보가 같은 사진으로 같은 답변을 한다. 지루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어서 그런 거 따질 게 아니다’는 근엄한 소리, 넣어두시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지루함’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기자도 지겨운데 독자들은 오죽할까. 편두통이 몰려온다. ‘읽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감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거철 ‘뻔’한 사람들과 ‘뻔’하지 않은 얘기를 나눈다. ‘뻔뻔’한 인터뷰다. 지난주 박소영 전 목포부시장 직무대행에 이어, 이번주는 이보라미 전남도의원을 만나본다.




이보라미 전남도 의원은 잘 웃는 사람이다. 그 웃음소리를 굳이 의성어로 쓰자면 ‘헤헤’와 ‘깔깔’의 중간쯤에 있는데,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기를 띄게 된다. 이보라미 의원은 또 체구가 작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쩐지 큰 사람이기도 하다. 이보라미 의원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말을 잘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참, 정치인 답지 않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는 참, 타고난 정치인이다.

나는 삼호읍을 헤매다 작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보라미 의원은 “뭐 내어줄 게 없다”라며 ‘찐 고구마’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었다. 아메리카노와 찐 고구마. 찐 고구마와 아메리카노.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맛있는 조합이다. 꾸미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인다. 내어준 이와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지난 1월 19일,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 군수 출마 선언할 때, ‘영암 군민께 청혼합니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정치인 답지 않게 촉촉한 감성이랄까. 누구 아이디어인가?
“내 생각이다. 그게 다 이유가 있다. 나는 평소 어르신들을 자주 뵙는다. 선거 유세를 하고 민생 현장을 살피는 게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솔로잖나. 어르신들께서 내게 물어보시는 단골 질문이 있다. ”

- 시집 언제 가냐고?
“그렇다.(웃음) 군민들께서 내 결혼에 상당히 관심들이 많으시다. 어떤 분들은 “당선 되면 결혼할 거야?”라고 물어보시고, 어떤 분들은 “결혼한다고 약속하면 찍어줄게”라고도 말씀하신다. 그럼 별 수 있나. “사람 찾아보겠습니다! 당선되면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그 때가 도의원 선거 때였는데 지금까지...(웃음)

자연스레 ‘나는 군민들하고 결혼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려면 청혼부터 하는 것이 순서잖나. 내가 먼저 군민들께 청혼을 한 것이지. 진짜 결혼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기도 하고...”

- 결혼이 힘들다니, 연애 사업이 어떻길래.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일에 워낙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남는 시간이 없다. 나는 당 활동과 의정 활동을 병행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

내가 정치인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연애가 정치와는 달랐으면 한다. ‘자만추’라고도 하지 않나.(‘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 만남이 계산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 연애하듯이, 누구든 만나서 마음 맞고 눈 맞으면 연애하고 싶다. 하지만 내 주위 남자들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내가 무슨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쉬를 통 안 한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도 못 된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면 그제야 ‘괜찮은 사람인가’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다가오질 않으니, 연애는 ‘낙선’이다. ”

- 정치인은 ‘이름도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나.
“내 이름은 국문학을 전공하시던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아버지는 한글을 정말 사랑하시던 분이셔서 내 이름을 ‘이보라미’, 동생 이름은 ‘이나라’라고 지어주셨다. ‘보람’이 아니고 ‘보라미’인 이유는 이름을 부를 때 ‘보라미’라고 부르게 되지 않나. 소리나는 그대로, 그 자연스러움이 사람 이름이라고 하셨다.

내 나이대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덕분에 인지도 많이 높아졌다. 한 번 만난 분들도 기억을 곧잘 해주신다. 정작 난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서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 ”

부모님, 자매들과 함께 ‘찰칵’, 사진 하단 제일 우측이 이보라미 도의원.

-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나
“어릴 땐 골목대장이었다. 동네 애들 모아서 술래잡기나 노래자랑을 했다. 여자애들 괴롭히는 남자애들은 내가 대신 때려준 적도 많다.

성격이 그러하니 딸만 셋이던 부모님은 나를 아들처럼 여기셨다. 특히 엄마는 딸 셋 중에 내가 제일 활발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웃음)“네가 아들 노릇을 해야한다”라며 많이 의지하셨다.

우리 부모님께선 이북에서 내려오셨다. 다른 친척이 없었기에 외로웠던 가족이지만, 오히려 서로 의지하며 끈끈하게 지낼 수 있었다. ”

- 자매들과 있을 땐 어떤가. 싸우기도 하나.
“딸들은 여느 집안이나 서로 잘 지내지만 우리 자매는 유독 끈끈한 편이다. 특히 언니는 내가 암투병을 할 때, 엄마처럼 병수발을 해줬다. 그 힘 덕분이었을까. 나는 무사히 유방암을 이겨내고 완치까지 했다. 언니는 지금은 나와 함께 살며 든든하게 뒷바라지 해주고 있다. 가사의 모든 것을 전담해주니까 내가 마음 놓고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 ”

유독 '끈끈한 사이' 인 언니, 동생과 어린 시절 찍은 사진. 사진 우측이 이보라미 도의원.

- 도의원 낙선 후 삼호중공업에 복귀했던 것으로 아는데.
“회사에 8년 만에 복직해 4년간 근무했다. 공백기가 있어 처음엔 좀 헤맸다. 몇 달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이전처럼 곧잘 ‘도장 설계’를 하게 됐다. 설계를 잘못하는 것을 ‘오작’이라고 한다. 8년이란 공백기가 있었지만, 나는 4년간 단 한 번의 오작도 내지 않았다. 정치에 비하면 회사 생활은 쉽고 재밌었다.

정말 어려웠던 것은 업무 외적인 것이었다. 정치를 하기 전, 직장에서 내 나이는 딱 중간이었다. 복귀하니 10년 후배들이 과장이 돼 있고, 훨씬 어린 직원들이 근무했다. 적응이 어렵더라. 세대 차이 나는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와 내 나이가 같다는 직원들도 있었다. 세월이 이렇게 금방 갈 줄이야. ”

- 우리 어머니와도 동갑이다.
“...뭐? 뭐 그런...(한참 웃던 이 의원은 뛰쳐나갈 시늉을 했다)”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보라미 전남도의원.

- 영암의 첫인상은 어땠나. 솔직히 말해달라.
“회사의 사택에 처음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것은...‘오지(奧地)’? 우리나라에 이런 데도 있었나? (격한 웃음)”

- 지역구를 잊은 것인가. 당신은 영암의 군수 후보자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한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을 처음으로 내려왔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윽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영암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암에는 아름다운 월출산과, 더 아름다운 영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도시인이던 이보라미에게 공동체의 중요성과 농업, 농촌의 중요성도 깨닫게 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왔듯, 새로운 세상을 보게 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지역구여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영암이 지역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

- 영암의 가장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사람. 영암은 사람이 가장 특별하다. 내가 많이 배웠다고 했잖나. 영암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지금까지 가르쳐주신 은혜에 잊지 않고 보답하고 싶다.

산호읍 산음마을에 한 어머니가 계셨다. 췌장암을 앓고 계셨지만 늘 다정한 분이셨다. 나는 평소 그분께 암에 좋은 음식 등을 알려드리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 저도 유방암이 있어요” 라고 하니, 의사 손녀에게 나를 소개시켜주면서 수술 일정을 잡아주셨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를 위해 “내 딸이나 다름없으니 꼭 좋은 선생님 소개시켜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머니께 “암을 이겨내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요”라고 했지만 이뤄질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암을 이겨내지 못하셨다.

이것은 정치 밖의 이야기다. 마음과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군수 출마의 강력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을 영암군에 베풀어주라는 게 어머니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한 영암군을 만들고 싶다.

내 마음이 이러하니, 어찌 군민들께 청혼을 안 하고 배기겠나. 물론 그 답이 '승낙'은 아닐 수도 있다. 뭐 어떤가? 거절당하는 게 두렵다면 아무 것도 못한다.

그러니, 이젠 내가 군민들께 물을 때다. “군민 여러분! 제 청혼, 받아주실거죠?”
유우현 기자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