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손에 죽다 - 한비자

칼럼
친구의 손에 죽다 - 한비자
강성률 철학박사의 재미있는 철학이야기
  • 입력 : 2024. 02.29(목) 12:47
  • 영암일보
<사진=강성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관포지교’에서처럼 아름다운 우정이 있는가 하면, 친구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있다.
바로 한비자와 이사(李斯)의 이야기이다. 한비자는 기원전 3세기에 중국의 한나라에서 명문 귀족의 후예로 태어났다. 하지만 날 때부터 말더듬이여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외롭게 성장했다.

그런데 당시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많은 땅을 빼앗기고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한비는 임금에게 편지를 띄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화가 난 한비자는 울분이나 풀어보겠다는 마음에서 10만여 자나 되는 책을 썼는데, 이것이 바로『한비자』이다.
그러나 왕은 책을 눈여겨보지도 않았으며, 한비자가 말더듬이라는 이유로 등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이 책을 가지고 진나라의 시황제에게로 갔다.
진시황은 그것을 읽어보고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사가 “저는 이 자와 함께 대유학자인 순자에게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라고 자랑하였다.

진시황은 한나라를 급히 공격하도록 군대에 명령을 내렸으며, 그의 공격 의도를 알아차린 한나라 왕이 즉시 한비자를 한나라에 보냄으로써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스승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예절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친구인 이사는 학생 시절에 자신이 한비보다 못한 줄을 알고 있던 데다, 그가 진시황의 총애까지 받게 되자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서 진시황 앞에 나가 참소하여 말하기를, “한비자는 언젠가 진나라에 큰 위험이 될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미련한 진시황은 이사의 간교한 말을 믿고 한비를 감옥에 넣었다. 그렇지만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에 안달이 난 이사는 몰래 하수인을 시켜 독약을 보내 자살하도록 명령하였다. 한비는 이사의 모함을 눈치 채고 여러 차례 상소하였으나 끝내 죽고 말았다. 결국 그의 억울한 죽음은 함께 공부한 친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중에야 모든 것을 깨달은 진시황이 사람을 보내어 한비자의 죄를 벗겨 주었다. 그러나 이미 한비의 몸은 백골로 변해 있었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사 역시 조고(趙高, 환관 출신의 간신)의 참소로 진시황의 뒤를 이은 호해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다.

한비는 언젠가 유세(遊說-자기의 의견을 임금에게 아룀)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유세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편(임금)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재물의 이익을 말하면 속물이라 하여 깔보고, 반대로 그가 재물의 이익을 바라고 있을 때 명예를 이야기하면 세상일에 어둡다고 흉본다. 군주가 비열한 짓을 하려 할 때, 그것을 아는 체 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임금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거나 도저히 중지할 수 없는 일을 그치도록 하여도 목숨이 위험하다. 그러므로 유세하는 자는 군주의 긍지를 만족시키되, 그의 수치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군주의 결점을 추궁하지 말 것이며, 그에게 항거하여 분노케 하지 말라! 오랜 시일이 지나 임금의 온정이 두터워지면 그때 자기의 뜻을 추진해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며, 임금에게 간언하더라도 죄를 입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기의 몸을 비단으로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한비는 이러한『세란』(說難-말로 인하여 생기는 어려움)이 실제로 자기의 몸에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결국 그는 유세의 어려움을 자신의 몸으로써 후세에 알린 셈이 되었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