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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그 고향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릴 때는 그저 내가 태어나 자란 평범한 마을이라고 생각했지만, 긴 세월을 살아온 지금 돌아보면 고향은 내 삶의 뿌리였고, 마음이 지칠 때마다 찾아가는 가장 따뜻한 기억의 자리였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이다.
1960~70년대의 도포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우리 고향에는 해창만이라는 바다가 있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넓은 갯벌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는 하나의 놀이터이자 자연이 베풀어주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갯벌에 나가면 무엇이든 만날 수 있었다.
운지리도 있었고, 짱둥어도 있었다. 갯벌 사이를 살피다 보면 맛과 게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마트에 가서 손쉽게 사 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갯벌을 찾아가 자연이 내어주는 것들을 얻었다.
어린 우리에게 그 갯벌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고향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이었다. 바다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갯벌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고향의 풍요로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고향의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영산강을 막고 물길이 바뀌면서 해창만의 바다는 점차 논으로 변해갔다. 어린 시절 뛰놀던 갯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드넓은 농토가 펼쳐졌다. 한때 짱둥어가 뛰놀고 게와 맛이 숨어 있던 갯벌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라진 바다가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그 땅 역시 고향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다. 바다가 내어주던 풍요가 이제는 들판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포의 황토 땅은 농부들에게 귀한 선물이었다.
붉고 기름진 황토에서 자란 수박은 달고 시원했으며, 무와 배추를 비롯한 여러 농산물도 고향의 자랑이었다.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서 논과 밭이 생겨났고, 그 땅은 다시 사람들의 땀과 정성으로 풍성한 결실을 만들어냈다.
생각해 보면 고향의 역사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온 변화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바다였던 곳이 논이 되고, 갯벌에서 잡던 짱둥어와 게 대신 들판에서 수박과 무, 배추가 자라났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친구들과 마을길을 뛰어다니고, 바닷가 갯벌에 나가 짱둥어와 게를 잡으며 하루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의 밥 짓는 냄새가 마을 골목에 퍼졌고, 하루를 마친 어른들의 이야기소리가 정겨웠다.
그때는 평범했던 그 풍경들이 이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되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고향도 그렇다. 떠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해창만의 바다는 이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갯벌에서 뛰놀던 짱둥어와 게도,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가 논으로 변하고, 논과 밭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듯이 고향의 모습은 변했을 뿐이다. 그 땅에는 여전히 계절이 찾아오고,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리며 결실을 거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란 수박과 무, 배추에는 여전히 고향의 흙냄새와 사람들의 정성이 배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향을 생각할 때 바다와 들판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는 해창만의 푸른 바다와 넓은 갯벌, 짱둥어가 뛰놀던 물가와 붉은 황토밭, 그리고 그 황토에서 자라난 수박과 무, 배추가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 모든 것이 내 고향 도포다.
세월은 고향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지만, 내 마음속 고향의 풍경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어쩌면 고향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언제든 마음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오늘도 나는 가끔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도포를 떠올린다.
해창만의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갯벌에서는 짱둥어가 뛰어오르고, 저 멀리 황토 들판에는 잘 익은 수박이 영글어가던 그 시절.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아, 내 고향 도포.
바다는 논이 되었지만, 내 추억 속에서는 아직도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그 바다는 앞으로도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다.
[약력]
· 전 초등학교 교장
·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40여 년간 교직생활과 함께 지속적인 음악활동
· 현재 광주 우미악단에서 색소폰 연주 및 문화예술 봉사활동
· 「내 고향 도포」 노래 작사 · 작곡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10.23(금) 11:17











